[횡설수설/권순택]대학 주식회사

  • 입력 2007년 6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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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워릭대 기숙사는 방학 때면 호텔로 바뀐다. 방문객들을 투숙시키고 학술행사를 유치해 수입을 올린다. 학과 신설의 최우선 기준은 수익률이다. 다양한 연구센터와 트레이닝센터도 중요한 수입원. 기업들과 파트너십 관계로 운영하는 ‘워릭 매뉴팩처링 그룹’은 전형적인 산학 협력 프로그램이다. 주요 수입원인 아트센터는 한 해 25만 명의 관객이 찾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복합 문화공간이다. 학생들이 ‘워릭 주식회사’라고 부를 만하다.

▷워릭대는 1970년대만 해도 정부지원금이 예산의 70%나 됐다. 그러나 지난해 예산 2억8400만 파운드(약 5213억 원) 가운데 정부지원금은 27%로 크게 줄었다. 각종 사업의 수익금이 늘어 예산의 63%를 충당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2000년 이 대학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워릭대는 역동성과 질(質), 그리고 기업가적 열정을 지닌 영국 대학의 표상”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앞으로 사립대가 적립금으로 주식 투자도 할 수 있게 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업종 제한도 크게 완화해 백화점이나 영화관, 편의점, 약국, 심지어 옷가게 등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그제 발표했다. 2005년 기준으로 전국 193개 4년제 사립대 적립금은 4조4573억 원이나 된다. 그러나 수익금은 2476억 원으로 수익률이 5.55%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정기예금 이자 수익이 대부분이다.

▷적립금 투자 대상을 다양화해도 한계는 있어 보인다. 지금도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는 사립대 재단 수익용 기본재산 운용 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193개 사립대가 2005년 5조1000억 원 규모의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올린 수익은 2929억 원으로 수익률이 고작 5.7%였다. 빌딩 임대업, 장례식장 운영, 유가공업이 주요 수익사업이고, 주식투자 수익은 164억 원에 불과했다. 대학들이 연구비와 장학금으로 주로 사용돼 안정적인 관리가 필요한 적립금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투자해 성공적인 ‘대학 주식회사’로 바뀔 수 있을지 주목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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