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과의 전쟁’, 親盧세력 결집 위한 건가

  • 입력 2007년 5월 31일 2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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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9개월도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이 왜 갑자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는지 궁금했는데 열린우리당이 의문을 풀어 줬다. ‘언론의 취재 통제라는 새로운 대결 소재로 정국을 주도하고, 언론과의 대립을 동아 조선 중앙 등 3대 메이저 신문과의 확전으로 몰아가 레임덕을 방지하고 친노(親盧·친 노무현) 세력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제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송영길 사무총장이 보고 있던 ‘기자실 통폐합에 관한 의견’에 나오는 내용이다.

청와대와 송 총장은 “당에서 생산된 문건이 아니다”고 했지만 선뜻 믿기 힘들다. 설령 이 문건이 열린우리당 내 비노(非盧·비 노무현)나 탈노(脫盧·탈 노무현)세력이 친노 세력의 의도를 경계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해도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주류 언론을 주적(主敵)으로 삼아 국민을 편 가르고, 지지 세력의 결집을 꾀해 온 이 정권의 언론 전략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정권 사람들에겐 애초부터 국민의 알 권리나, 언론의 알릴 권리는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언론까지도 정략적 이용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러고서도 이를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라고 하니 참담할 뿐이다.

이번 취재 통제 조치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언론 선진화를 위한 사육신”으로 자처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된 언론교육 한번 받지 못한 사람이 ‘국민의 알 권리, 특히 국가정보 접근권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인정되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조차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한국신문협회는 그제 “문제의 핵심은 기자 편의시설 폐지가 아니라 공무원 사회의 정보 폐쇄성”이라고 항의했고, 한국기자협회 서울지역 39개 지회 중 37개도 어제 정부의 취재통제 조치를 ‘희대의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촉구했다.

매체의 종류와 성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로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정치적, 정략적 의도를 거듭 확인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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