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다시보는 국수전 명승부…패신(敗神)에게 홀렸다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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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과격한 끼움수로 낭패를 보았던 조훈현 국수가 중반 상대의 완착을 멋지게 응징하며 형세를 반전시켰다. 서봉수 9단이 눈을 감고 두지 않는 이상 질 수 없는 바둑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될 집안은 호박을 심어도 수박이 열리고 안 되는 집안은 인삼을 심어도 더덕이 나온다. 아흔아홉 가지의 이기는 길을 놔두고 희한하게도 지는 한 가지 길을 밟을 때가 있다. 패신에게 홀리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되는 장면이다.

끝낼 수 있을 때 끝내지 못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 게 승부다. 조 국수가 몇 번의 결정타를 놓쳤다. 그러고도 여러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 흑 135로 두어 “둘 중의 하나”를 외친다. 다음 147의 곳을 끊어 중앙 백대마를 낚는 수와 우상귀 백대마를 잡는 수. 양손에 쥔 떡이다.

“여덟, 아홉…” 하는 초 읽는 소리에 서봉수 9단이 황급히 백 136으로 젖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흑 137이 노타임으로 떨어진다. 흑은 2시간이나 시간 여유가 있다. 김인 9단이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사람마냥 승부를 서두르는 조 국수의 초조함을 집어냈다. “흑 137은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것과 같은 실전심리다. 참고도 흑 1로 웅크렸으면 우상귀 백 ○를 잡는 수와 흑 A로 끊어 중앙 ○, 둘 중의 하나는 잡았을 것이다.”

바둑이 끝난 뒤 서 9단도 인정했지만 도전기 세 판 모두 고전했다. 그만큼 서 9단이 ‘순국산 국수’로 탄생하는 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던 것이다. 흑 143이 마지막 패착이었다. 흑 ‘가’, 백 ‘나’를 선수하고 ‘다’에 두는 게 “둘 중의 하나!”를 취하는 확실한 길이었다. 조 국수는 백 146으로 살아도 흑 147로 끊어 상황 끝이라고 보았으나 착각이었다. 과연 백대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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