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익섭]장애인이 행복한 사회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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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도 유별나게 변화가 더딘 것이 있다면 장애인의 현실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올 때마다 항상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질문이 된다. 장애인 복지 예산도 늘고 새로운 법과 제도도 만들어졌다는데 가난과 소외라는 장애인의 삶은 그대로다.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있어도 장애인의 실업률이 일반인의 3배에 이르고, 장애수당제도가 있어도 장애인의 소득 수준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의 절반 정도에 머물고 있다.

권리협약-차별금지법 제정됐지만

그래도 올해 장애인의 날은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유엔 총회와 우리 국회에서 역사적인 선물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3일 장애인권리협약이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은 지구촌의 모든 장애인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멕시코 대통령이 장애인권리협약 특별위원회를 제안한 지 5년 만에 8번째의 국제인권법이 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법적 효력이 있는 장애인 국제조약을 만든다는 원대한 꿈이 실현됐다.

한국에서도 3월 6일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장애인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장애인권리협약의 채택과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게 하는 장애인 복지의 핵심이다. 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규정들이 의미하는 바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육받는 일은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정보통신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문화생활과 레저를 즐김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동등한 법적 권한과 사생활을 보장받아야 하며, 가족을 구성하고 출산하며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기를 개발하고 보급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터나 학교에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바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건축물에 불필요한 문턱을 없애고 TV 방송에는 자막을 삽입해야 한다. 교육의 기회가 활짝 열려야 하며 일터에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아니다.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제공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장애인의 날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귀중한 권리협약과 차별금지법이 꼭 실효를 거둘 수 있게 말이다.

첫째,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사회의 덕목이 된다. 선진국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도둑처럼 닥쳐온 장애로 통곡하는 부모의 슬픔을 개인의 운명이나 비극으로 돌리는 것은 미성숙한 사회의 반응이다. 어린이가 행복한 가정은 가족 모두가 행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동등한 권리 보장 못하면 무슨 소용

둘째,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 투자이기에 결코 낭비가 아니다. 장애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몇백 년을 살아 봐야 알겠는가. 장애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미래의 우리 모두를 배려하는 노력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애는 인류의 진정한 성숙을 위한 도전이다. 장애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길목이며 인류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보편적인 과제다. 이를 무시한 채 진정한 인권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애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던져진 마지막 질문이자 인권 실현의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이익섭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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