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국내 미니기업]<5>컴퓨터냉각기 회사 잘만테크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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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잘만테크 본사에서 직원들이 조립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쿨러를 박스에 담아놓고 있다. 최종 조립 단계인 이 공정에서는 쿨러의 불량 여부를 가리기 위해 전수 검사한다. 김재명  기자
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잘만테크 본사에서 직원들이 조립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쿨러를 박스에 담아놓고 있다. 최종 조립 단계인 이 공정에서는 쿨러의 불량 여부를 가리기 위해 전수 검사한다. 김재명 기자
‘세빗’에서도 인기지난달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및 통신 전시회인 ‘세빗(CeBIT)’의 잘만테크 부스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잘만테크는 세빗에 6년 연속 참가했다. 사진 제공 잘만테크
‘세빗’에서도 인기
지난달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및 통신 전시회인 ‘세빗(CeBIT)’의 잘만테크 부스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잘만테크는 세빗에 6년 연속 참가했다. 사진 제공 잘만테크
《“우리 회사(잘만테크)를 어떻게 알았죠?”

“인터넷에 제품 리뷰가 있던데요.”

2001년 초 잘만테크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10여 개국 업체로부터 제품을 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품 양산을 시작한 지 불과 1, 2개월 만이라 수출은 꿈도 꾸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 제품은 데스크톱PC 안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 및 그래픽카드의 냉각기(쿨러). 소형 팬을 돌려 컴퓨터의 열을 식혀 주는 제품으로 잘만테크는 소음이 거의 나지 않는 쿨러를 만들고 있다. 이 회사 설립자인 이영필(59) 사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지만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한 국내 대학생이 ‘잘만테크 쿨러를 달면 컴퓨터가 조용해진다’는 내용의 글을 영어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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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52개국에 CPU 및 그래픽카드 쿨러를 수출하고 있는 잘만테크는 한번 거래를 시작한 바이어는 거래를 끊은 적이 없는 기록을 갖고 있다. 소비자가 선전해 주고 바이어가 먼저 찾아오는 기업, 부품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몇 안 되는 기업이다.

○틀어놓고 잠잘 만큼 조용

잘만테크의 쿨러는 얼마나 조용할까.

서민환(43) 연구소장은 “일반 제품의 소음이 대략 30dB(데시벨) 정도인 반면 잘만테크 제품의 소음은 평균 25dB 이하”라며 “25dB은 조용한 밤에 작게 들릴 수 있는 수준의 소음”이라고 말했다.

잘만테크는 조용한 컴퓨터를 구현해 보자는 취지로 이 사장이 1999년 설립했다. 직원은 150명이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406억 원. 영업이익률은 23%에 이른다. 매출액 중 해외 수출 비중이 83%이며 쿨러의 세계 시장(소비자 직접 상대 시장) 점유율은 약 30%다.

시장조사업체인 프로스트&설리번에 따르면 2005년 세계시장 점유율 23%로 2위였던 잘만테크의 쿨러는 지난해 1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60∼70%에 이른다. CPU나 그래픽카드에 잘만테크의 쿨러가 달리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잘 사려고 하지 않을 정도라고 이 사장은 설명했다.

이 회사 남영우(47) 상무는 “잘만테크의 쿨러는 저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시장에서는 1등이 아니지만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시장에서는 1등”이라며 “경쟁사 제품 대비 가격이 1.5배 정도 비싸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잘만테크의 그래픽카드 쿨러는 3만∼5만 원, CPU 쿨러는 5만∼8만 원 수준이다.

○바이어 접대비는 연 1000만 원뿐

이 회사는 기술력이 좋은 데다 영업력이 뛰어나고 조직도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8명의 해외영업 인력이 52개국을 맡고 있다. 경리담당은 여직원 2명뿐이며 80명의 생산직 관리자는 과장 1명이다.

연간 샘플 발송 비용은 1억 원에 이르지만 접대비는 연 1000만 원 정도다. 제품이 좋으니 영업 실적은 덩달아 좋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2005년 경력직으로 입사한 남 상무는 “면접 도중 연간 접대비가 1000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무조건 입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도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2005년 9월 신제품 CPU 쿨러 2만 개를 생산해 선적 직전에 품질 검사를 하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CPU의 열을 팬에 전달하는 접촉 부분의 표면이 평탄하지 않아 열 전달이 잘 되지 않았던 것.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이 이미 광고해 놓고 제품을 기다리던 중이었지만 이 사장은 전량 폐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20일 만에 전 직원이 밤새도록 일해 다시 불량 없는 2만 개를 생산해 냈다.

한번 잃은 신용은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남 상무는 “지금은 그 제품이 잘 팔리고 있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잘만테크는 제품을 전수검사하며 열을 팬에 전달하는 접촉 부분의 표면에 조그마한 흠집만 있어도 불량으로 처리하고 있다.

남 상무는 “결국은 기술력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한다.

잘만테크는 열전달 파이프와 팬의 제조 과정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동그란 제품의 형태는 의장등록이 돼 있다.

○“우리는 자부심을 판다”

잘만테크의 바이어 중 한 곳인 네덜란드의 에이치 에세르사(社) 건물 옥상에는 ‘Zalman(잘만)’이라고 씌어진 커다란 네온사인이 걸려 있다. 오히려 옆에 있는 자사의 이름 표시보다도 크다.

남 상무는 “PC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일 뿐이지만 ‘잘만’을 아는 PC 사용자들에게 잘만테크의 쿨러는 하나의 필수품이 됐다”고 말했다.

잘만테크는 6년 연속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전시회 ‘세빗’에 참여했다. 하지만 다른 기업과 달리 이 회사 직원들은 해외 전시회에 나가도 할 일이 별로 없다.

친구를 데려와 알아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는 잘만테크 마니아들이 어디를 가나 꼭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려 주는 사례다.

잘만테크의 임원들이 공통되게 한 말은 “우리는 자부심을 판다”였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이영필 사장 “성실성 보려 하루종일 입사 시험”▼

이영필(사진) 잘만테크 사장은 명함이 2개다. 하나에는 ‘잘만테크 대표이사’라고 적혀 있고 다른 하나에는 ‘리&목 특허법인 대표변리사’라고 돼 있다.

“변리사라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90년대 초 특허법인 직원과 조용한 컴퓨터 냉각장치(쿨러)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기술만 개발해서 로열티를 받고 팔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술을 넘겨받은 회사가 만든 쿨러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 기술로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잘만테크는 이렇게 해서 1999년 만들어졌다.

이 사장이 잘만테크를 이끌어가는 신조는 ‘쿨 이노베이션’.

실제로 그는 직원들에게서 ‘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3평이 채 안 되는 그의 사무실에는 책상과 회의용 탁자만 있다. 자신은 20만 km를 넘게 달린 그랜저를 몰고 다니지만 임원들에게는 새 차를 뽑아 준다.

잘만테크는 5월 18일 코스닥 상장이 예정돼 있다.

이 사장은 기념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대학생 자녀들 둔 직원들에게 연 200만 원의 학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혜택은 주로 생산직 아주머니들에게 돌아간다.

지난해에 4월에는 미리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해 직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 놨다.

이 사장이 직원 채용에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필기시험. 재무관리, 무역영어 등 과목도 5, 6개나 된다. 이 회사 남영우 상무는 2005년 입사 당시 하루 종일 필기시험을 보기도 했다.

이 사장은 “필기시험의 목적은 끝까지 앉아서 시험을 마치는 성실성을 체크하기 위한 것”이라며 “필기시험을 본 뒤 ‘삼성도 아닌데 왜 이렇게 까다로우냐’고 투덜대는 구직자도 있지만 잘만테크에 입사하려는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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