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돈은 핵보다 강하다

  • 입력 2007년 4월 16일 19시 59분


코멘트
6자회담이 2·13합의에도 불구하고 추진동력을 잃은 것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인 북한 자금 2500만 달러 때문이다. 북한은 이 돈을 돌려받기 전에는 2·13합의로부터 60일 이내에 이행하게 돼 있는 영변 핵시설 폐쇄 등의 초기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끝내 이행 시한(14일)을 넘겼다.

문제는 미국이 동결을 해제한 뒤 북한이 이 돈을 굳이 외국 은행을 통해 돌려받으려 한 데 있다. 떼일 뻔한 돈도 찾고, 이를 통해 국제금융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복귀하겠다는 계산이겠지만 북한이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도록 법외(法外) 서비스를 해 주려는 은행은 지구상 어느 곳에도 없다.

미국의 애국법(financial anti-terrorism act)은 돈세탁을 하는 외국 금융기관이 미국과 금융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미국이 돈세탁은행(primary money laundering concern)으로 공식 지정한 BDA의 북한 불법자금을 송금해 줬다간 신인도가 급락할 게 뻔하기 때문에 북한의 혈맹인 중국의 은행들조차 북한을 도와줄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이 딱해도 ‘내 코가 석 자’니까.

북한의 행태는 법 이전에 금융 시장이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고립무원의 왕따가 된 것은 미국이 2005년 9월 15일 BDA의 북한 자금 세탁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그러자 이 은행에선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났고, 다른 국가의 은행들도 북한과의 거래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시장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미국이 국제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현실에서 시장의 이런 반응은 너무도 당연하다.

12일자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6자회담 복귀를 종용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북한의 활동을 추적할 능력이 있다. 당신들이 달에 계좌를 개설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그것도 추적할 수 있다.” 부처가 손바닥 위의 손오공을 들여다보듯 미국이 북한의 돈 흐름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김 부상이 ‘허걱’ 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 것 말고는 달리 대응하지 못했을 수밖에.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결심만 하면 총 한 방 쏘지 않고도 북한을 금융 제재만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미국이 군사 압박 대신 ‘돈줄 죄기’로 오히려 북한에 더 심한 고통을 준 것은 금융을 지배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 준 것이다.

북한은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당당한 핵보유국으로서 불패의 국력을 가지고 모든 힘을 경제 건설에 집중할 수 있게 됐으며 조국의 내일을 눈앞에 볼 수 있게 됐다”고 호언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착각이다. 핵무기를 껴안고 산들 거기서 쌀이 나오는가, 돈이 나오는가.

외국과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할 수 없어 현금을 싸들고 다녀야 하는 판에 ‘강성대국’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북한이 생존하려면 이젠 국제 금융시장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눈을 떠야 한다. 시장의 힘은 핵무기보다 크고 무섭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