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기홍]포토맥의 벚꽃… 그리고 ‘위안부’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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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도 갑작스레 봄이 찾아왔다. 며칠 전만 해도 눈발이 날렸는데 주말에 봄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리의 벚나무마다 꽃망울이 뛰쳐나오고 있다. 신문에는 그 유명한 워싱턴 포토맥 강가의 벚꽃축제 개막을 예고하는 광고가 쏟아진다.

개인적으론 언젠가 제주대 캠퍼스 벚꽃 길에서 맞은 화우(花雨)가 워싱턴 벚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나라의 것이든 흐드러진 하얀 꽃잎 아래 서면 잔잔한 축복을 받는 듯한 느낌에 젖는다.

하지만 직업병일까. 요즘 포토맥 강가에 피어나는 벚꽃들을 보노라면 자꾸 미일관계, 한일관계 같은 딱딱한 주제 쪽으로 상념이 흐르곤 한다.

포토맥의 벚나무에는 한국엔 통한의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유래가 담겨 있다. 이 벚나무들을 심은 주역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묵인한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당사자 윌리엄 태프트(1909년에 대통령이 됨) 미 육군장관의 부인 헬렌 태프트 여사다. 1907년 일본을 방문한 헬렌 여사는 벚꽃에 매료됐고 일본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벚나무 3000그루를 보냈다.

그 벚나무들이 자라 이룬 군락을 바라보며 귀가해 노트북 컴퓨터를 열어 보니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동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보낸 단체 e메일이 와 있다. 16일 타계한 시나모토(椎名素夫) 전 일본 의원을 추모하며 쓴 에세이를 동북아 관련 그룹에 보낸 것이다.

그린 전 보좌관은 워싱턴의 대표적인 ‘친일파’다. 26일 동아일보·조지타운대 공동주최 국제콘퍼런스의 휴회시간에 북한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등을 둘러싼 미일 간 갈등의 소지를 걱정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이 추모 글에서 일본 유학 시절 만나 비서로서 모셨던 시나 전 의원의 인격과 식견, 업적을 소개하면서 “그는 우리의 나침반”이었다는 최대의 헌사를 바쳤다. 그린 전 보좌관이 일본에 빠져든 데는 이처럼 한 일본 정치인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어 인생의 멘터가 된 사례는 요즘 일본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미국 정치인인 마이크 혼다 의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혼다 의원은 일본계인 자신이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하게 된 배경에 제2차 세계대전 전쟁영웅인 한국인 김영옥(1919∼2005) 대령이 있다고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후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콜로라도 주의 강제수용소에 보내져 어린 시절을 보낸 혼다 의원은 1988년 미 행정부가 재미 일본인 사회에 공식 사과하는 것을 지켜보며 국가가 저지른 범죄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를 배웠다. 당시 미 행정부의 사과를 이끌어 낸 데는 미국 사회에서 존경을 받던 김 대령이 큰 역할을 했다.

혼다 의원은 미 행정부의 사과를 모델로 삼아 캘리포니아 주의원 시절인 1999년 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주의회에 상정했다. 그러자 재미 일본계 지도자들이 거센 철회 압력을 가해 왔고 혼다 의원은 김 대령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대령은 일본계 참전 용사들의 지지 서명을 받아 줬고 재미 일본계 지도자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

퇴역 후 작은 월세 아파트에 살면서 연금의 대부분을 사회봉사에 쓰다가 조용히 눈을 감은 김 대령. 혼다 의원은 그런 그를 ‘정치인으로서 나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영웅’이라고 표현한다. 벚꽃의 군무(群舞)가 국경을 초월해 아름답듯이 사람이 사람에게 준 감동도 핏줄과 국적을 뛰어넘어 선순환하며 피어나는 것 같다. 벚꽃보다 더 잔잔히, 더 오래.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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