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훈]좌초한 ‘법률가 리더십’

  • 입력 2007년 3월 22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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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번 대선에는 법조인 출신 후보가 없어 걱정”이라고 한 정상명 검찰총장의 발언이 법조계의 밥 먹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한동안 얘깃거리가 됐다.

몇몇 법조인과 만난 자리에서 한 젊은 변호사가 “(법조인 후보로) 천정배, 강금실이 있잖아”라고 농담조로 말을 꺼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지난 대선에는 법을 그렇게 잘 안다는 법조인 후보들이 나와서 한쪽은 ‘차떼기’를 하고, 한쪽은 집권해서 나라 질서가 이 모양인가”라고 냉소했다.

정 총장의 발언 취지는 법조계의 속사정을 잘 아는 후보가 없으니 혹시라도 현실에 맞지 않는 공약이나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었으니 별론으로 치더라도, 이번 대선에는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법조인 출신 후보가 보이지 않고 있다.

10년 전인 1997년 15대 대선 때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한동 전 국무총리, 박찬종 전 의원, 이인제 의원 등 법조인 출신 후보가 즐비했다. 2002년 16대 대선은 법조인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과 이 전 총재가 맞대결을 벌였다.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는 동안 법조계는 지독한 정치바람을 타야 했다. 심지어 판사들까지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며 똘똘 뭉치는 분위기가 있었고, 노 대통령에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을 중심으로 한 ‘노변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변호사 모임)’가 있었다.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뒤로 법원과 검찰 내에서 이 후보를 밀었던 것으로 지목된 인사들은 좌천과 승진탈락 같은 된서리를 맞아야 했다.

그 사이 명멸했던 법조인 출신 대선후보들은 ‘3김 정치’ 이후의 유력한 차세대 지도자들로 꼽혔다. 3김이 앞장서서 이들을 정치권에 끌어들였고, 법률가라는 전문성과 부패한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함 등을 무기로 이들은 정치지도자로 설 수 있었다.

이번 대선에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도전장을 냈으나 유력 후보의 반열에 끼지 못하고 있고,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출마 자체가 불투명하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21세기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법률가 리더십’의 확연한 퇴조를 증명하는 것이다.

최초의 법조인 출신 대통령인 노 대통령이 이렇다 할 법률가적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한 것도 이유일 수 있다. 검찰 독립이나 사법개혁 같은 화두가 있었지만 크게 각광 받지 못했고, 오히려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이런저런 요직에 올라 자기 사람 챙겼다는 말만 들었다.

올해의 대선후보군에는 잠재적인 후보들까지 포함하면 기업가, 여성, 언론인, 재야운동권, 학자, 관료 출신 등 그 성분이 다양하다. 인물이 누구이고, 소속 정당이 어디냐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번 대선은 각 분야의 리더십이 경쟁을 벌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거다.

거꾸로 법률가 리더십은 경쟁력을 잃고 옹색해져 있다. 법조비리 사건에 이어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납치극에 가담했다는 희대의 사건까지 벌어진 위기 상황이다. 수십 년 동안 독과점의 특혜를 누려 온 결과다. 법조계의 속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을 비(非)법조인 출신 대선후보들에 의해 개혁 대상으로 몰리기 전에 법조계 전체가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야 할 때다.

김정훈 사회부 차장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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