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직

  • 입력 2007년 3월 19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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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인가. 예전에는 두툼한 소설에 더 많이 끌렸는데 요즘엔 얄팍한 시집에 먼저 손이 간다. 얼마 전 최종천 시인의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어떠한 고역도 시련도 없이/성공한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특히 그가 지도자가 되려 한다거나/굳이 예를 들자면/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다면/그의 당선에 반대하리라/사람의 털을 벗겨버린 신의 뜻은/상처를 입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하다못해 땅마저도/상처가 아니라면 어디에/사랑을 경작하랴’(‘성공은’ 중에서)

때가 때여서인지 시인이 말하는 ‘지도자론’에 공감이 간다. 탈당선언을 하느니 안 하느니, 누가 나서느니 안 나서느니, 온통 대선 후보들의 ‘날 좀 보소’ 놀이터 같다. 이런 과정을 모두 통과해 어느 후보가 나오든 먼저 그의 정책이나 공약 등을 검증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사람이 어디 늘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판단하고 선택하던가. ‘정서적’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시인이 제시한 기준을 포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만 생각해 보니, 대선을 대비해 ‘경선 드라마’니 어쩌니 하는 세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개개인이 나만의 잣대를 갖는 일도 중요하다 싶다. 특히 많은 국민은 지난 몇 년 사이 우리 사회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면서 ‘대선은 나와 별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올 대선만큼은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를 뽑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을 터다.

사실 누구도 완벽할 순 없다. 그런 만큼 무엇을 우선순위로 볼 것인지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게 좋겠다. 시인의 기준은 겸손을 위대함의 시작으로 봤다면 요즘 내가 목록에 추가한 기준 하나는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들을 선택해, 그들과 함께 짐을 나눠 질 만한 사람인가’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영면하기 전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남자, 여기에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스스로 골랐다고 한다. 그는 철강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 대신 훌륭한 인재들을 찾아 더불어 일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막대한 부를 쌓고 사회를 밝히는 자선 사업에 앞장설 수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아는 게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우기는 사람, 나홀로 제일 똑똑하고 나만 옳다고 믿는 사람, 그러면서도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거나 자신을 고칠 생각은 않고 남 탓, 여건 탓만 하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제외할 작정이다.

이쯤에서 돌아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직은 무엇일까. ‘그거야 당연히 대통령이지’라고 다들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최초의 유대인 대법관으로 존경받는 루이스 브랜다이스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공직은 바로 일반 시민이라는 것이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락 오바마가 토크쇼에 나와 이 말을 인용하면서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나도 무릎을 쳤다.

맞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공직은 시민이라고 믿는 사람, 자신보다 국민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 지지자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지향하는 사람만이 대통령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찾아나서는 어려운 수능시험이 2007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결국, 마지막 심판은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가 받는 것이다.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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