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부 판결문부터 쉽게 써야

  • 입력 2007년 3월 11일 2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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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가 작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추진하는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이 지난주 임시국회에서 첫 결실을 냈다. 어려운 한자나 일본어식 법률 용어를 쉬운 우리말 표현으로 바꾼 38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법률 용어나 표현을 알기 쉽도록 고치는 대대적인 개정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거니와 중간에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해운법의 ‘揚荷(양하)’와 ‘裸傭船(나용선)’을 ‘짐 나르기’와 ‘선체만을 빌린 선박’으로, 문화재보호법의 ‘貝塚(패총)’을 ‘조개무덤’으로, 검역법의 ‘공익을 害(해)하다’를 ‘공익을 해치다’로 고친 것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국민 경제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법 상법 세법 등을 쉽게 바꾸는 일이 급하다. 이들 법률의 경우 용어의 뜻을 모르거나 어려운 표현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법이 ‘법조인의 전용물’이라거나 ‘법률가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변호사의 도움 없이는 고소 고발장이나 소장(訴狀)을 쓰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판결문 내용 중에는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데다 문장까지 지나치게 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법제처의 ‘쉬운 법령 만들기’는 사법부의 대대적인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법부는 이미 판사들에게 쉬운 판결문 쓰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문장이 길고 어려울수록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판사가 아직도 적지 않아 보인다.

사법부는 ‘사법부의 주인은 국민’이라면서 국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 등 서면자료에 의존하기보다는 법정 공방(攻防)을 위주로 하는 공판중심주의로 가겠다든가, 소수의 시민대표를 재판에 참여시키는 배심제 참심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사례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쉬운 판결문 쓰기’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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