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미니스커트를 위한 변명

  • 입력 2007년 3월 1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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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나쁠수록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이 맞는다면 지금은 분명 불황이다. 미니스커트 유행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길이도 무릎 위로 적당히 올라오던 것이 요즘은 5∼10cm 더 짧아졌다. 올봄에는 좀 더 대담한 디자인의 초(超)미니스커트도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경기 흐름에 민감한 당국자들이 눈을 흘길지 모르겠다. 미리 말해 두지만 ‘검증되지 않은 속설로 경제 불안 심리를 부추길 의도’는 결코 없다. 최근의 경기 상황이 몹시 걱정스럽지만 ‘미니스커트 유행=경기 침체’식의 분류법엔 동의하지 않는다.

불경기에 여성들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논리는 비과학적이며 천박하기까지 하다. 업자들이 옷감 원가를 줄이려고 치마 길이를 줄인다는 해석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내수 경기가 위축된 와중에 유독 미니스커트가 승승장구하는 비결이다. 단순히 길이가 짧아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미니스커트가 뭇 남성의 눈요깃감 역할에 안주했다면 젊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일선 디자이너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성공의 원동력은 혁신과 조화다. 눈썰미 없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재질과 색채, 형태 면에서 참신한 제품이 많이 나왔다. 주름 잡힌 스커트, 풍선 모양 스커트 등 각양각색의 디자인 혁신이 이뤄졌다.

미니스커트는 원래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여성이 여름철에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레깅스나 바지와 함께 입는 방법을 고안해 연령과 계절을 초월한 옷으로 거듭났다.

조화의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신체와의 조화, 액세서리와의 조화, 다른 의상과의 조화다. 서양 여성의 체형에 맞춰 나온 서양 옷이지만 한국에선 한국 여성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한계를 극복했다.

여성 캐주얼 의류 브랜드 쿠아의 김은정 디자인실장은 “허벅지가 굵고 하체가 짧은 편인 한국 여성의 신체 특성을 고려해 몸에 달라붙는 제품보다는 약간 넉넉하고 다리가 길어 보이게 디자인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고 소개했다.

미니스커트의 신화는 실적 부진으로 고민하는 다른 업종의 경영자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노하우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학습해야 할 사람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디자인하고 집행하는 당국자들이다.

정책의 취지와 결과가 어긋난 수많은 사례는 주변 여건과의 조화를 무시한 채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시장과의 조화, 정책 목표와 수단의 조화, 명분과 현실의 조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적어도 부동산 정책의 참담한 실패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니스커트가 잘 팔리자 스타킹, 신발, 벨트 등 연관 제품이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미니원피스와 핫팬츠도 미니 열풍에 힘입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가 의류 패션업계의 매출을 늘리는 효녀 구실을 톡톡히 한 것이다.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여성이 많다고 해서 불경기라고 지레 위축될 필요는 없다. 엄혹하던 외환위기 당시 유행한 패션은 길고 통이 넓은 바지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였다.

미니스커트는 경기 침체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옷’이 아니다. 오히려 불황 탈출의 해법을 제시하는 훌륭한 참고서다.

박원재 특집팀 차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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