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 탓이오’만 남은 대통령의 ‘탓 시리즈’

  • 입력 2007년 2월 19일 2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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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취임 4주년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은 일이 잘못되면 으레 ‘남 탓’을 하는 습성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양극화와 경제난은 전(前) 정권 탓, 땅값 집값 상승은 이른바 ‘부동산언론’ 탓, 정국 불안은 야당 탓으로 돌렸다. 2005년 대연정(大聯政) 제안 때는 “국민이 연정에 찬성하지 않는 것은 정치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국민 탓까지 했다.

대통령은 설 연휴 중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한다’는 글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던 소위 진보진영을 “유연성과 책임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문에 진보가 망했다고 원망하면 지나친 얘기다. 돕지는 못할망정 흔들지 말아 달라”고 쏘아붙였다.

대통령의 ‘진보 탓’은 최장집 손호철 교수 등 일부 학자가 “국정실패 책임을 지고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 데 대한 응수다. 보수와 진보 양쪽의 협공 아래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최 교수가 대통령의 보수언론 공격에 대해 “실패의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비판하자 대통령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언론권력의 횡포를 ‘별것 아니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역공했다.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와 주한미군 평택 기지이전 반대 시위를 비판하면서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의 이런 지적에는 적지 않은 국민이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통령이 워낙 ‘남 탓만 많이 한 탓’에 이런 타당한 말조차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만다.

최 교수는 대통령 취임사 작성을 위한 토론에 참여한 바 있다. 그런 ‘초기의 우군’까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서는 것은 현 정권의 무능과 독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좌우 양쪽에 그만큼 넓고 깊게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남 탓 과잉’은 비판을 참지 못하는 협량과 누구든 “깨부수고 말겠다”는 오기의 소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는 남은 임기 1년을 ‘자신과 국민을 위해’ 생산적으로 꾸려 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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