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아프리카서 느낀 한국인의 자부심

  • 입력 2007년 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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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아프리카 최고의 관광도시로 꼽히는 이곳에서 기자를 반긴 것은 시내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삼성과 LG의 최신 휴대전화 광고판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콩고민주공화국. 이 나라 최초의 유선전화망이 머지않아 설치된다고 했다. 시공을 맡은 회사는 한국 기업이었다.

아시아를 휩쓴 한류 열풍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의 이름은 아프리카 오지인들의 뇌리에까지 서서히 침투하고 있었다. 지난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첫 해외 순방을 동행 취재하며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은 기자의 눈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대륙과 조국의 어제 오늘이 선연하게 대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세계 속에서의 위상을 비교하기도 어색해졌지만 1960년 콩고민주공화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80달러였다. 당시 전후 혼란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1인당 GDP는 84달러. 아프리카의 유망주 중 하나로 꼽히던 케냐는 300달러가 넘었다.

이들 국가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한국은 무서운 의지로 성장한 것이다.

기자에게 이번 취재 일정은 ‘시간여행’을 뛰어넘는 문화적, 문명적 충격이었다. 지난달 30일 반 총장과 함께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아프리카 최대 슬럼가 ‘키베라’를 방문한 일행은 빈곤을 넘어 참상에 가까운 광경에 하나같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몇 세기를 거꾸로 간 느낌이었다. 먼저 든 느낌은 가진 것에 대한 감사였다. 상하수도, 위생적인 음식, 전기, 통신, 의료시설, 인터넷….

일행 중 한 사람은 “뉴욕에 있는 아들이 보고 뭔가 느낄 수 있도록 슬럼가 사진을 찍었다”며 “우리는 감사할 것이 무척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도 봄만 되면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은 사람들의 소식이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두 세대가 채 안 되는 세월 동안 수많은 한국인이 오지의 수출 현장에서, 공장의 생산 현장에서 뜨거운 땀방울을 쏟았다. 이런 총체적 노력의 결과가 오늘날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외교관은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면 한국인이라는 점이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 아프리카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이었다.―나이로비에서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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