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곤]교육과정 개편, 학생은 어디 있나요?

  • 입력 2007년 1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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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개편을 둘러싸고 담당 과목 교사 사이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회과 교사와 전공 교수들은 주당 수업시간을 3.5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리라고 하고, 지리과 교사들은 사회과에서 지리를 분리해 달라고 요구한다. 기술 가정 음악 미술 교사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를 원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생에게 뭘 가르칠지가 먼저인데

교사 간의 ‘권력투쟁’을 끝내기 위해 어떤 사람은 과목별로 대표 선수를 선발해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바람직한 방안은 아니지만, 설혹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 싸움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교과과정 개편 작업은 특정 과목 시간이 늘어나면 다른 과목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개편은 앞으로 사회를 이끌고 나갈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의 문제다. 당연히 교사가 아닌 학생의 처지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학생이 교사의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돼서는 안 되며, 더욱이 교사의 ‘권력투쟁’ 희생물이 돼서도 안 된다.

학생의 처지에서 교육과정을 개편한다는 얘기는 학생의 특성, 능력, 장래 희망과 함께 10년 혹은 20년 후 사회생활을 할 때 과연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고려한 후 개편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앞으로 한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등을 사회적으로 깊이 있고 폭넓게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의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전문화되고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직업이 생겨나고 없어진다. 또 국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느 분야든 세계 일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모든 사회 분야에서 창의적이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다양한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지정 필수과목을 대폭 줄이고, 지역과 학교마다 나름의 특성을 살려서 교육하도록 선택과목과 재량시간을 늘려야 한다. 또 학생이 능력, 적성, 장래 희망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생의 필수과목은 17개나 된다. 미국과 영국의 두 배 이상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필수과목을 외국처럼 줄이겠다고 큰소리쳐 왔다. 이번 개정안대로 하면 오히려 19개로 늘어난다. 교육부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해 학생은 버려두고, 교사의 밥그릇 늘리기에만 앞장서고 있다.

교사들 밥그릇 지키기 권력투쟁만

대안은 무엇인가? 먼저 학생의 처지에서 교육과정을 개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과목별 전공자 위주의 교육과정위원회를 폐지하고 미래학자, 교육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학부모 등으로 위원회를 재구성해야 한다. 위원은 미국처럼 공모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 집단의 추천을 받고, 철저하게 자격을 심사해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가 아닌 이 위원회가 교육과정 개편의 최종 결정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과 담당 교사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복수전공을 하도록 해야 한다. 독일의 중고교 교사는 대부분 국어와 사회, 영어와 수학, 기술과 미술, 음악과 과학 등 성격이 서로 다른 교과목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복수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교사 사이에 큰 갈등 없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 과감하게 교육과정을 개편할 수 있다. 하루속히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정진곤 한양대 사회교육원장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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