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본업(本業)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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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주 시드니를 여행했다. ‘세계 3대 미항(美港)’에 든다는 시드니항의 야경을 즐기려 큰맘 먹고 오페라하우스가 바라다보이는 레스토랑에 저녁 예약을 했다. 거대한 조개껍데기를 연상케 하는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비끼는 남반구의 석양은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면서 즐거운 기분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장소와 시간에 걸맞지 않은 형편없는 음식이었다. 나중에는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일어서면서 드는 생각은 한마디로 ‘이건 아니잖아…’였다.

음식점은 무엇보다 음식을 잘해야 한다. 전망은 그 다음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고, 직장인은 업무의 능력과 성취로 평가받는다. 대통령은? 두말할 필요 없이 국정 운영 능력과 실적이다.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하던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노무현 대통령이 들고 나오자 ‘현 정권에서 개헌 반대’가 70% 안팎에 이른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왜 내가 하는 건 다 반대하느냐’는 피해의식이 크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노 대통령이 하면 다 반대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국민 모두 아는 그 이유를 노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만 모른다는 데 있다. 개헌이든 대연정이든 대통령의 본업인 국정 운영을 잘한 뒤에야 말발이 먹히게 돼 있다.

실적이 바닥인 상사가 “회사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제안들을 쏟아 낸다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10% 안팎의 국정 운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새로운 카드를 꺼낼 때마다 본업의 실패를 호도하려는 정략이나 꼼수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17일 편집·보도국장단과의 오찬에서 “개헌이 정략이라면 나한테 돌아오는 이익이 뭐냐”고 물었다. 굳이 ‘집권 연장 기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돌아가는 이익은 많다. 우선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의 말대로 개헌은 그를 ‘정국의 주인공으로 계속 있도록 하는 상품’이다. 또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면 당분간 실정(失政)이 가려질 수 있다. 말끝마다 역사를 얘기하는 노 대통령은 ‘지지율 10%대의 대통령’보다는 ‘개헌을 이룬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철저히 본업으로 기억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단죄하고, 하나회를 척결하는 등 한국 민주주의 신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럼에도 본업인 국정 운영에 무능해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바람에 이런 치적들이 묻혔다. 추잡한 섹스 스캔들을 남긴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을 미국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경제가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헌법상 대통령 선서의 “나는…국가를 보위하며…”에 나오는 대통령의 본업인 ‘국가보위 책무’ 중 중요한 것이 차기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공정한 대선 관리다. 노 대통령은 “개헌은 차기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차기를 꿈꾸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심판이 설치면 선수들이 주목받지 못한다. 또 심판이 가리면 관중(국민)은 선수들의 기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이번 개헌 추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민은 다 안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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