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제 저런 교육]거기 인내를 가득 채우거라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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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소중함을 가르치려고 우유 팩으로 만든 집짓기 장난감.
자원의 소중함을 가르치려고 우유 팩으로 만든 집짓기 장난감.
“시아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김지룡 씨)

“화가요.”(시아)

일본 문화비평가에서 최근 자녀 경제교육 전문가로 변신한 김지룡(43·경기 파주시 조리읍) 씨는 3년 전 큰딸 시아(9)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화가라…. 김 씨는 “처음 딸의 꿈을 듣자 ‘제대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파블로 피카소와 반 고흐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화가로서 엇비슷한 명성을 얻었지만 맘껏 부(富)를 누린 피카소, 그리고 늘 가난에 허덕였던 고흐. 그는 “같은 반열에 올랐지만 한 사람이 부를 누리지 못한 건 ‘경제관념’이 없었기 때문일 것 같았다”면서 “돈에 대해 가르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무작정 따라하다… 시행착오의 연속

경제교육이라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만화로 된 어린이 경제도서를 건넸다.

며칠 뒤 “어떤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아?”라고 묻자 시아는 “강아지가 참 예뻐요”라고 답했다.

돈의 소중함을 알려 주려고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 줄 때마다 50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딸아이의 ‘신바람’은 1주일도 못 갔고 “엄마, 나 돈 필요 없어”라고 했다. 돈에 대한 절실함보다 동생 돌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김 씨는 “좋은 행동을 유도하려고 돈을 이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돈을 주면 버릇만 나빠질 뿐”이라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왜 할인매장의 물건이 슈퍼마켓보다 쌀까?” 등 다양한 경제개념과 원리를 설명해 줬지만 시아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경제교육 전문가의 조언을 무작정 따라 하는 건 의미가 없었죠. 그 대신 아이 수준에 맞게 차근차근 시도해 보리라 결심했어요.”

○‘한계(허용범위) 내에서 합리적 선택을 가르쳐라’

2005년 어느 주말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을 찾았다. 일부러 주머니에는 교통카드와 현금 5000원만 넣었다.

“이 돈으로 하루 종일 여기서 놀 거야. 이것저것 많이 사먹으면 자전거는 못 타겠지?”(김 씨)

“아빠 지갑에 돈 있잖아요?”(시아)

“아니, 오늘은 지갑 없어, 봐.”(김 씨)

“음…. 그럼, 자전거 타려면 얼마나 내야 하는데요?”(시아)

‘허용범위 안에서 우선순위 정하기’는 할인매장에서의 쇼핑, 여행 등으로 점점 확대했다. 시아는 허용범위(예산)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대안(무엇을 살까)을 고려하면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경제원리’의 기본을 다져 갔다.

지난해 1월 용돈 관리도 시작했다. 군것질, 친구 생일선물 준비 등의 용도로 매주 2000원을 주되 절반은 저축에, 200원은 남을 돕는 기부용으로 떼어 놓는다는 조건이었다.

김 씨는 “용돈을 줄 때는 부모가 3, 4개월마다 용돈 기입장과 잔액을 정산해 주라”며 “잔액이 맞지 않을 때는 적절한 벌칙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는 아이로 키워라

용돈을 받은 뒤 시아는 자전거, 플루트 등을 살 때 저축에서 최소한 10%를 보태고 있다.

김 씨는 “먹고 싶은 걸 참아 가며 모은 돈으로 산 물건에는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며 “용돈을 주면 예산에 맞춰 생활할 뿐 아니라 욕망을 억누르는 습관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집안 곳곳에 놓여 있는 ‘동현이 덤프트럭’ ‘시아의 크리스마스 말 타기’ ‘이현이 언니랑 뮤지컬 보기’ 등 용도에 맞게 이름을 붙인 저금통도 이런 이유에서 마련됐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둘째 동현이(4)는 재활용센터에서 덤프트럭을 보자 막무가내로 사달라고 졸랐다. 동현이에게도 경제교육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날부터 매일 10원짜리 동전 10개를 주고 저금통에 넣게 하면서 “이게 다 차면 사자”고 달랬다.

김 씨는 “동현이 수준에서는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다(희소성)는 걸 배우는 것이 경제교육”이라며 “‘동현이 덤프트럭 저금통’을 만든 뒤 아무것이나 사달라고 떼쓰는 일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지난해 베스트셀러였던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내일의 더 큰 만족을 위해 눈앞의 작은 욕망을 억누르는 자제력이 ‘부자의 밑거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파주=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김지룡 씨의 가정 경제교육 따라해 보기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한번에 들어주지 말라-자기 절제를 배운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용도별 저금통을 만들라-기다림을 배운다

△아이의 장난감은 우유 팩, 페트병 등을 재활용하라

-자원의 소중함을 배운다

△돈으로 착한 행동을 유도하지 말라

△일정 기간 저축한 다음 펀드 상품 등으로 투자처를 옮기라-투자 개념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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