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삶이 바뀝니다]‘보육원 아이’에서 사회복지사로

  • 입력 2006년 12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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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대 기자
박영대 기자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두 차례 장학금을 받은 그는 월급의 1%를 기부하는 것으로 고마웠던 마음을 세상에 되돌리고 있다. “벌이의 1%를 투자해서 어려운 아이들이 살 집을 지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덕분에 아이들이 잘 자라 사회에서 한몫을 해 낼 수 있다면 주식을 사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투자가 아닐까요.”(주 씨)

그러나 그의 기부는 1%가 아니다. 그의 삶 전체가 세상에 자신을 기부하는 것이다.

○ 버려졌던 삶, 보육원 아이

주 씨는 ‘보육원 아이’였다.

강원 정선군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에 어머니를, 네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를 키울 능력이 없었던 큰형은 어린 주 씨를 서울까지 데리고 와 거리에 버려두고 떠났다.

“제가 보육원에서 자랄 땐 산에서 칡뿌리를 캐다 먹어야 했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어요. 보육원 아이라고 학교 선생님들도 저를 심하게 다뤘죠. 교실에서 뭐가 없어지면 무조건 불러 다그칠 정도였으니까요. 저를 깔보는 사람들을 누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보육원을 뛰쳐나갔다. 신문 배달을 시작으로 일용직 노무자, 웨이터, 국화빵 장수, 신발가게 종업원, 포장마차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열아홉 살엔 동업으로 포장마차를 차려 하루 순수익만 70만 원 이상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은 잠시였다. 동업자가 아버지 병 수발을 위해 사채를 얻어 쓴 게 결국 주 씨의 발목까지 잡았다.

“사채를 빌려준 사람들이 동업자 아버지의 산소호흡기를 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떼면 사람이 죽는데… 그렇게는 할 수 없었어요.”

모아둔 돈을 모두 털고 카드 3개까지 긁어 빚을 갚아줬다. 목숨을 구한 선택은 그에게 1억3000만 원의 빚을 남겼다.

○ “동생들 버팀목이 돼 줄 것”

1999년 도망쳐 나온 보육원을 다시 찾았다. 원장 ‘아버지’에게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당시엔 건설회사에서 전기공으로 일하고 있던 때라 공부할 여건이 아니었다. 원장은 그가 한 사회복지관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2001년 그는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야간부에 입학했다.

“다른 대학 컴퓨터공학과에도 합격했어요.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까 사회복지사로 살아갈까 심각하게 고민했죠. 아무래도 보육원 동생들에게 힘이 돼 줘야 할 거 같았어요. 돈은 열심히 살면 벌 수 있지만 동생들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돼 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잖아요.”

낮엔 복지관에서 일하고 저녁엔 대학을 다녔으며 밤엔 이튿날 새벽까지 남대문시장에서 심부름을 해 돈을 벌었다. 하루 1시간밖에 못자는 고된 나날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10여년 만에 가까스로 빚을 모두 갚았다.

그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자신이 자란 보육원에 사회복지사로 돌아왔다. 9개월부터 만 18세까지 79명의 아이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른다. 그가 “동생들”이라고 부르는 10대 남자 아이만 45명이다.

“동생들 보면 그만할 때 제 모습이 보여요. 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어릴 때 많이 싸웠거든요. 그에 비하면 요즘 애들은 참 착한 편이죠.”

이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 기댈 데 없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혼자 살 수 있는 법을 가르친다.

“보육원 출신 가운데는 성공하면 돌아와서 보육원에 큰돈을 내놓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그랬죠. 하지만 그렇게 결심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성공은 쉽지 않고 성공하면 마음도 바뀌니까요. 오히려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보육원에 매달 1만 원이라도 보내 주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죠.”

담배 한 갑 사 피우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 돈을 모아 내놓는 것, 그것이 기부의 시작이라고 주 씨는 말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보육원의 후원금은 2000원부터 시작된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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