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현대아산의 겨울

  • 입력 2006년 11월 27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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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 임직원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지난 주말을 보냈다. 이 회사는 금요일인 24일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발표했다.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금강산 관광사업이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일부터 내년 3월까지 넉 달간 급여와 상여금 지급이 일부 보류된다. 직급에 따라 급여는 10∼30%, 상여금은 100∼300%를 받지 못한다. 직원 10명 중 한 명은 재택근무로 바뀐다. 신용평가회사인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아산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

현대아산에는 유능한 직원이 적지 않다. 현대그룹은 고 정주영 창업주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사업 합의서 체결 다음 해인 1999년 2월 대북(對北)사업을 위해 현대아산을 만들었다. 당시 각 계열사에서 우수한 인력을 많이 차출해 배치했다. 겨울의 문턱에 접어든 지금,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겼다가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회사 측은 “내년 날씨가 풀리고 내금강 관광이 시작되면 경영 상태가 호전되고 유보된 급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북핵 사태는 북한 관광의 위험성을 결정적으로 부각시켰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쓰나미(지진해일)만 발생해도 큰 타격을 입는 것이 관광업이다. 하물며 북한의 핵 도박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한 푼의 돈이 급한 북한으로서는 관광객의 신변 안전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남한에서 가는 사람과 돈을 ‘속국의 조공(朝貢) 사절과 물품’쯤으로 여기고, 편의에 따라 말 뒤집기를 다반사로 해 온 그들을 믿고 한가하게 금강산 유람에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대의 대북사업은 처음부터 무리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 가는 기업 활동의 냉철한 판단은 찾기 어려웠다. 반면 남북한 정치권력과 유착한 경영 외적 고려가 지나칠 만큼 개입됐다. 거래의 파트너인 북한 당국은 최소한의 상도의(商道義)조차 지키지 않는 ‘불량 고객’이었다.

백번 양보해 첫 출발의 의미는 인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전용된 의혹이 짙은 뒷돈 제공 논란과, 이미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남북 체제경쟁의 비극적인 혼돈, 또는 역전이었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현대가 남한의 두 정권과 손잡고 온갖 수모를 겪어 가며 북한에 달러를 퍼 주고 얻은 것은 기업의 경영악화와 한반도의 ‘거짓 평화’였다. 한국이 자랑하는 ‘현대’ 브랜드는 북핵 위기 이후 해외 일각에서 경계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지만 기업과 권력의 ‘잘못된 만남’이 이처럼 큰 국가적 재앙을 불러온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떤 그럴듯한 궤변으로도 이 엄중한 현실을 가리거나 호도할 수는 없다. 고인이 된 정주영-정몽헌 회장 부자(父子)도 자신들이 밀어붙인 대북사업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아산의 겨울’이 얼마나 이어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빨리 봄이 오기를 기대하지만 북한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제 차가운 겨울의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대아산의 실패는 ‘기업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뼈아프게 일깨워 준다.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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