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오만의 리더십, 설득의 리더십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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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리더십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국민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독선적 일방적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이 극복하기 어려운 정치적 위기에 빠진 것은 설득의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공감을 얻는다. 고려대의 총장이 최근 연임에 실패한 이면에는 옳은 방향을 추구해도 구성원에 대한 충분한 설득 작업이 없으면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대명제가 작용했다고 한다.

주도적 리더십의 달콤한 유혹

설득의 리더십을 논한 학자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리처드 뉴스태트라는 미국 정치학자가 생각난다. 그는 1960년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책을 써서 케네디의 조언자 역할을 한다. 뉴스태트가 보기에, 바람직한 대통령 리더십은 부드러운 설득에 바탕을 둬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바가 상대방에게 좋다고 믿게 만드는 일이 설득의 리더십이다. 대통령의 권위에서 자연스레 나오거나 한두 번의 계기로 갑자기 생기지 않고 쌍방향의 대인관계를 통해 신뢰와 평판을 쌓는 대통령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 논지다.

뉴스태트의 주장은 널리 공명을 자아냈지만 동시에 비판을 받았다. 현실상 쉽지 않은 설득을 과도하게 강조해선 곤란하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은 남을 배려하는 부드러운 설득에 매달려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기보다는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강한 주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도적 리더십을 위해 첫째로 대통령의 공적 권위, 둘째로 이념의 호소력, 셋째로 거시적 청사진의 수사적 매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비판론자의 주장이다.

미국 정치의 현실은 한동안 비판론자의 주장대로 흘러갔다.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등 현대 미국 정치의 획을 그은 대통령은 부드러운 설득보다 공적 권위, 이념, 슬로건을 내세우는 주도적 리더였다.

1994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처럼 설득의 리더십을 실천하고자 한 예외도 있었지만, 당시 ‘공화당 혁명’을 이끈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과 현 부시 대통령으로 일방적 강성 리더십의 맥이 이어지며 설득의 리더십은 주변으로 밀린 듯했다. 그러다가 부시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성으로 설득의 리더십이 관심을 끌고 있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에 따라 미국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던 일방주의적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설득의 리더십이 미국에서만 재조명된 것은 아니다. 언론에 보도됐듯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 시는 재정 파탄으로 허덕이고 있다. 6월 파산 선언에 이어 21일 재정재건계획을 공개했는데 세금 인상, 직원 감축, 주민혜택 축소가 주 내용이다. 일본 총무성은 시의 공공서비스가 전국 최저 수준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구 노력을 강화하게 할 계획이다. 반면 아오모리(靑森) 현 무쓰(陸奧) 시는 원전 관련 시설을 주민 동의하에 유치하며 건실한 재정을 향유하고 있다. 시장이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한 덕택이라고 한다.

일방적 권위론 국민지지 못받아

주도형 리더십이 과거에는 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사회 이익이 분화되는 오늘날에는 대중의 생각이 너무 다양하고 가변성이 많다. 일방적 권위, 이념, 수사로는 국민의 지지를 장기간 받을 수 없으며 한쪽 방향으로 주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힘이 들지만 일방적 리더십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구성원과 끊임없는 쌍방향 대화를 통해 부드러운 설득의 리더십을 지향해야 할 때다. 모든 조직의 지도자, 특히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지도자일수록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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