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이라크전 참전용사의 낙선

  • 입력 2006년 11월 16일 1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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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2년 전 이날 그는 공격용 헬기 블랙호크를 몰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상공을 날고 있었다. 느닷없이 로켓추진 총유탄이 조종석으로 날아들었다. 폭발음과 함께 화염, 파편, 연기, 충격이 그를 덮쳤다. 그는 헬기를 간신히 비상 착륙시키고 나서 의식을 잃었다.

10일 뒤 깨어났을 때 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오른팔도 으스러진 상태였다. 당시 36세. 헬기 조종사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재기하기 힘든 끔찍한 시련이었다. 영락없이 패배한 군인 신세였다.

태미 덕워스 미 육군 소령.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찬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답게 출전명령을 받아들였다. 조국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집안의 전통이었다. 선조는 독립전쟁에 참전했고 아버지는 해병대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서 싸웠다. 헬기 조종사를 지원한 것도 여군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전투병과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태국인이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그를 미국 민주당이 중간선거 후보로 점찍었다. 그는 이라크전쟁에 염증을 내는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살아 있는 표본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 대통령의 ‘승전 선언’ 한참 뒤에도 미군 헬기가 격추되는 상황을 고발하고 싶었다. 헬기 장비는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데 식량만 넘치게 공급되는 난맥상을 알렸으면 했다. 전쟁터에서 스테이크와 바닷가재를 먹기보다는 부하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새삼스러웠다.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이라크의 종파 다툼은 이라크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그러려면 의회에 진출해 행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두 번째 전쟁을 수락했다.

그가 출마한 일리노이 주 6선거구는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내리 16선을 한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정계를 은퇴하며 내놓은 의석이었다. 하이드 씨의 자리를 물려받으려는 공화당 후보는 주 상원의원 출신의 세련된 변호사였다. 처음부터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는 휠체어와 의족을 번갈아 이용하며 선거구를 누비고 다녔다. ‘힘들지 않으냐’는 지지자들에게 “죽을 뻔했는데 이 정도야…”라며 활기차게 응수했다. ‘민주당은 전쟁터에서 도망가는 겁쟁이다’ ‘이라크전쟁 반대자들은 애국심이 없다’는 공화당의 공격에 그는 자신의 몸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나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마라”고 맞받아쳤다. 11월 1일 여론조사에서 그는 14%포인트 앞서 있었다.

다급한 상대 후보는 “아랍 위성방송 알 자지라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고 외쳤다. 덕워스 후보를 찍으면 중동의 테러범이 좋아한다는 의도가 섞인 발언이었다. 공화당도 이곳만은 뺏길 수 없다는 듯 유권자들에게 대대적인 홍보 우편물과 녹음전화 공세를 퍼부었다. 결국 그는 2%포인트 차로 역전패했다.

덕워스 소령은 ‘생환기념일’인 12일 찾아온 지지자들에게 “아주 실망스럽지만 최선을 다했다. 여야가 마주 앉아 미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기에 미래를 낙관한다”는 낙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전쟁과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때건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상대를 인정하는 넉넉함도 보였다. 섣부른 좌절과 강파른 대치가 흔한 때 그는 진정한 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진 국제부 차장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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