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만우]‘노루 눈감기’식 한심한 청년실업대책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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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 마을에 첫눈이 쌓일 때가 됐다. 지금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눈이 쌓이면 산골 마을 사람들이 날을 잡아 노루사냥에 나서곤 했다. 눈 덮인 산 위에 올라가서 노루의 흔적이 보여 꽹과리까지 동원해 일제히 고함을 지르다 보면 숨었던 노루가 산 아래쪽으로 뛰어 달아나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쫓아다니다 보면 지친 노루가 계곡 구석진 곳에 머리를 처박아 쉽게 생포할 수 있다. 쫓기던 노루는 머리를 처박고 눈을 감아 버리면 쫓아오는 사냥꾼이 사라질 것으로 착각하다가 붙잡혀 죽고 만다.

청년실업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하위직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이른 것은 이제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참다못한 청년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비전 2030보다는 20대 청년 30명의 일자리가 더 급하다며 시위를 벌였다.

노무현 정부가 청년실업에 대처하는 방식은 ‘노루 눈감기’ 수법과 비슷하다. 세상이 다 아는 논공행상 코드 인사 문제를 지적한 글에도 총알같이 부인성 댓글을 싣는 국정브리핑이 청년실업의 심각성에 대한 숱한 지적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청년 일자리’에 대해서 무심한 것과는 달리 청와대 386이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난 후에도 패자부활전까지 챙겨 주는 눈물겨운 동지애를 보여 준다.

대통령이 해결할 최우선과제로

일자리 만들기 성과가 부진한 이유는 기업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채용 확대나 사회적 일자리 급조는 장기적으로는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부가 정부 예산으로 대학별 채용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은 일자리 수는 묶어 두고 구직자에게 면접기술만 가르치는 ‘제 닭 잡기’식 대책에 불과하다.

기업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부뿐만 아니라 일부 시민단체까지 힘을 합쳐 오히려 기업가 사기 죽이기에 매진한다. 국회는 연례행사처럼 기업가를 증인 소환하고, 행정부의 대표 선수격인 공정거래위원장은 교수 시절보다 더 바쁘게 강연에 나서면서 기업구조를 말로써 주무른다. 검찰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사건을 기소해 기업가를 법정에 불러 기억력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다.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을 풀어 달라는 기업계의 간청에 대해 쪽박 깨듯이 오히려 순환출자까지 금지하겠다고 나온다. 순환출자 규제는 여권 내부에서도 강봉균 정책위의장과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을 공공연히 표출하는 사항이다. 출자총액제한 폐지 논쟁은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기업 일자리 만들기와의 빅딜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열됐다. 처음에는 노태우 6·29선언에 견줄 만한 획기적인 제안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청와대와의 사전 입맞춤 절차를 빠뜨린 쑥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오히려 공정위의 성깔만 돋워 놓았다.

청년실업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기업 구조는 당장은 눈에 거슬리더라도 시장 규율과 상속세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청년시절을 백수로 보내면 그의 일생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다.

청년실업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기업에 대한 온갖 규제와 경영권 위협을 경감하는 대신 획기적인 일자리를 내놓도록 해야 한다. 상위 5대 기업이 평균 2000명, 차상위 25개 기업이 평균 400명, 그 다음 100개 기업이 평균 100명, 그 다음 500개 기업이 평균 20명, 기타 기업 순위 3000위 이내에 드는 기업이 평균 4명씩을 추가로 고용해 준다면 청년 5만 명을 실업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규제완화로 투자의욕 북돋워야

대통령이 기업 현장을 돌면서 사기를 돋우고 규제 철폐로 투자환경을 개선하면서 노동조합의 양보를 얻어 낸다면, 전직 대통령의 집을 찾아 나서는 것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훨씬 긴장시킬 수 있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은 대통령이 ‘평화를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로 놓듯이 ‘청년 일자리를 모든 경제정책목표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로 놓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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