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혁신 코미디, 규제 난센스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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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행정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혁신사업을 법으로 묶어 다음 정부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최상의 정부혁신은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 해제를 통해 민간부문이 마음껏 뛰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혁신은 외면하면서 도대체 무슨 ‘혁신’을 다음 정부에까지 법으로 의무화하겠다는 것인지 코미디라는 생각이 든다.

행정자치부가 17억 원을 들여 두 달 전에 문을 연 ‘정부혁신관(館)’은 찾는 이가 드물다. 우리 눈에는 예산낭비 사업으로 보인다. 행사 위주의 ‘혁신사업’ 때문에 관련 공무원들은 ‘혁신 피로’에 시달린다고 한다. 국회도 이런 사정을 잘 알 테니 이른바 정부혁신추진법안을 아무 생각 없이 통과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다음 정부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행정규제 하나라도 구체적으로 풀 일이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관련한 오늘의 조정회의를 앞두고 어제 갑자기 공정위 측 방안을 내놓았다. 환상형(環狀形)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중핵(中核)기업에는 출자총액제한제를 계속 적용한다는 안이다. 출자총액제한제 폐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몇 년째 논의돼 왔는데, 공정위는 특정 대기업 규제 강화로 변질시키니 기업들로부터 ‘세상 변한 것을 너무 모른다’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그제 경제5단체는 8개 분야 120건의 규제개혁을 정부에 거듭 건의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많다. 자동차 대형화 추세에 맞춰 운반용 트레일러의 길이를 2.3m 늘리면 적재효율이 높아져 연간 40억 원의 물류비 절감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외국 선주사의 요구에 맞춰 선박을 건조하다가 국내법을 거론하는 노동부 감독관 때문에 추가로 구명(救命)장치를 만들어 검사를 받은 뒤 이를 뜯어 낸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런 ‘난센스 규제’로 기업을 옥죌 건지, 참으로 답답하다.

크리스 홀런즈 주한 영국상공회의소 회장(SC제일은행 부행장)은 최근 “영국과 미국 정부는 ‘의논 기간’ 제도를 통해 규제입법 전에 수개월간 관련 기업의 의견을 듣는다. 한국 정부는 기업 말을 듣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충고를 듣고 규제를 줄이는 게 정부혁신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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