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개’가 안 짖어 투자 못 살렸나

  • 입력 2006년 10월 29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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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경제력은 생산량과 생산능력으로 잰다. 생산능력은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놓고 자재를 구입하는 등의 설비투자 누적 값으로 결정된다.

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선을 넘을 당시 설비투자 증가율이 4∼10%였다. 2001∼2005년 우리나라는 연평균 1.2%에 그쳐 연평균 경제성장률 4.5%를 훨씬 밑돌았다. 올해 약간 회복됐지만 더 커진 경제 규모에 비하면 영 부실하다. 2001년 이후엔 설비투자가 과잉의 반대인 ‘과소(過少) 상태’라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는 기업들이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설비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돕기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기에 바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 촉진’은 구호 뿐이었다. 설비투자 확대가 성장은 촉진할지 몰라도 균형 발전과 양극화 해소에는 방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인가. 전국에 각종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균형 발전이 되는 것은 아니며, 성장이 시원찮으면 저소득층의 살림이 더 힘들어진다는 경험을 할 만큼 했으면 생각을 바꿀 때도 됐다.

무슨 일이 잘못되면 노 대통령은 ‘안 짖은 개 탓’부터 하지만 그동안 ‘개’는 꾸준히 짖었다. 경제연구소들은 4년 이상 같은 보고서를 써 왔다. ‘설비투자 왜 부진한가’(LG경제연구원·2003년) ‘경기 재(再)침체 우려감 대두’(현대경제연구원·2004년) ‘중소기업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과 대책’(산업경제연구원·2004년) ‘최근 설비투자 문제점과 향후 대응 방안’(금융연구원·2005년) ‘설비투자에 관한 3대 논란과 평가’(삼성경제연구소·2006년)…. 월별, 분기별 경제동향 보고서들도 설비투자 부진의 심각성과 함께 대응책을 외치고 또 외쳐 왔다.

일본은 장기 불황에서 멋지게 탈출했다. 1990년대 공장의 해외 탈출이 이어지고 자산 가격은 폭락한 데다 기업 시스템과 금융 기능마저 제 구실을 못했지만 최근 수년 사이 해외로 나갔던 공장들이 기업 환경이 더 좋아진 일본으로 ‘U턴’하고 있다. 수출시장이 때마침 좋아진 덕도 봤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노력한 결과다. ‘규제개혁특구’ 제도가 그중 하나다.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민간사업자, 단체, 개인 등 누구라도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 해제를 신청해 특구로 지정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투자 기업에 각종 교부금을 주고 세금을 깎아 줬으며 경쟁적으로 외국 기업을 유치했다.

일본의 경험은 국내에 속속 전해졌다. 2004년 ‘일본 경제 부활의 교훈’ ‘일본의 투자 활성화 정책에서 배운다’에서 시작해 최근 ‘일본 기업 설비투자 활성화와 시사점’까지 보고서가 쌓여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또 몇 년이나 똑같은 보고서를 써야 하나.

일본식 ‘특구’ 안(案)이 우리 경제장관회의에 상정되면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인위적 경기 부양이면 안 한다”고 할 것 같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비전 2030’에 넣을지 검토해 보겠다”고나 할까.

법무부는 상법에 ‘회사기회 유용 금지’ 조항을 넣겠다고 한다. 좋은 돈벌이를 다른 쪽으로 빼돌려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회사 경영진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재계가 반발하는 이 법안을 정부에 먼저 적용하면 어떨까. 좋은 정책을 알고도 ‘코드’ 등의 이유로 내팽개쳐 국민과 국가 이익을 축낸 장관에게 ‘국가기회 유용 금지’ 조항으로 벌을 줄 일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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