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백면서생의 변신

  • 입력 2006년 10월 27일 2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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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장단체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기근과 치안 부재로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여기저기 주검이 널려 있고 굶주려 신음하는 소리가 어디서든 들려왔다. 누구도 ‘밤새 안녕’을 장담할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가 그곳에 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넉넉한 집안 출신에다 가장 좋다고 손꼽히는 중고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마쳤다. 가기 힘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수 자리에 오른 그였다.

그는 ‘당신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는 방글라데시 관료와 은행가들의 냉소를 잠재우기 위해 저주받은 땅, 탕가일 지역을 찾았다. 창백한 강단을 떠나 피와 땀이 흐르는 현장으로 향한 것이다. 유학 시절 만난 미국인 아내와의 이혼도, 사랑하는 딸과의 이별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줌의 양식이 없어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도대체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는 자책도 한몫했다. 이 사람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다. 1979년 그의 나이 39세 때, 이 결단을 통해 무담보 소액 대출을 앞세운 그라민은행의 씨앗이 뿌려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에 나오는 유누스 총재의 ‘변신’ 모습이다. 이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도 그라민은행 모델을 적극 받아들이자고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모델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라민은행은 손수레나 짐자전거 등을 구입할 정도의 돈을 빌려 준다. 극빈층의 자립, 자활을 도와주는 데 이 은행의 목적이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닌 한국에 들어맞지 않는 이유다. 방글라데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00달러대다. 더구나 한국에는 손수레 대신 주식과 부동산, 복권 등에서 ‘대박의 환상’을 좇는 이가 많지 않은가.

유누스 총재에게 배울 항목은 따로 있다. 바로 그가 교수의 권위와 학식, 체면을 모두 던져 버리고 현장으로 내려갔다는 점이다. 정치한 경제지식으로 빈곤의 원인을 해명하기보다는 가난 극복의 열쇠를 찾기 위해 빈민들과 어깨동무를 했다는 사실이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준 사례다.

기자가 알고 지내던 한 사업가가 들려준 얘기가 있다. 이 사업가는 대략 3년 단위로 분야를 바꿔 가며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새 사업을 할 때면 양복 대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밑바닥 일을 직접 했다. 새 일의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파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손댄 사업마다 실패를 몰랐던 배경이다. 유누스 총재의 ‘현장 우선주의’ 및 성공과 맥이 닿는다.

요즘처럼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보기 힘든 때도 없다는 생각이다. 저마다 자기만 정답을 알고 있다고 외치느라 바쁘다.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는 물론이고 정부와 국민, 시민단체 간에도 주장만 있지 이해와 양보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언제부턴가 밑바닥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는 자그마한 미덕마저 사라졌다. 오직 제 목소리만 앞세울 뿐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훌륭한 전통은 박제가 돼 창고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다시 현장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할 때다.

유누스 총재는 현장으로 뛰어드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의실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진 국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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