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가슴에 묻어야 할 유엔군 장병 4만895명

  • 입력 2006년 10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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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회 ‘유엔의 날’인 어제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선 6·25전쟁 때 전사했거나 실종된 유엔군 장병 4만895명의 추모명비(銘碑)가 제막됐다. 166개의 검은 화강암 판에 새겨진 이름들은 반세기 전 바다 저편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거나 연인, 남편, 형제였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 두고 이역만리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스러졌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유엔의 날’ 기념식사에서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로 넘쳐 났던 부산이 세계 선진도시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뿐인가. 대한민국이 최빈국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유엔이 지켜 주지 않았다면 벌써 공산화돼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세습 독재체제 아래서 자유를 잃고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6·25전쟁으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다시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유엔에 기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실험까지 했기 때문이다. 북이 이미 핵보유국의 문턱을 넘어선 상황에선 유엔을 통한 국제공조 대응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이상한 행보를 보인다.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유엔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자기 운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엔 투철한 주체의식을 보여 주는 말 같지만 사실은 무책임한 말장난이다. 유엔 결의를 반기지 않으면서 북을 돕는 것은 국민을 북핵의 인질로 만들려는 것과 같다. 국제공조에 동참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운명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더구나 유엔의 도움을 발판으로 번영을 이룬 나라의 위정자들이 유엔의 역할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국제적 배신행위다. 이렇게 유엔에 반기(反旗)를 들면서,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려고 많은 투자를 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개인이나 국가나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존재는 다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을 지키려다 산화(散華)한 유엔군 장병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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