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틀린 번지에 배달되는 ‘밑 빠진’ 복지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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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급여 수급자의 상당수가 수억 원대의 자산가라는 국정감사 자료가 어제 나왔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재산세 과세표준이 2억 원 이상인 의료급여 수급자가 460명이나 되고 이 중엔 50억 원대의 건물 보유자도 있다니, 그보다 못한 살림에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 온 국민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며칠 전 감사원이 발표한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안전실태’를 보면 경기 동두천시는 결식아동 400여 명에게 열흘치 냉동 도시락을 한꺼번에 택배로 배달했는가 하면 해외를 드나들며 소득을 올리는 ‘보따리 무역상’에게 생계비를 지급한 지방자치단체도 있었다. 일부 지자체는 1가구를 2가구로 분리하거나 군입대자까지 가구원 수에 포함시켜 생계급여를 이중 지급했다.

경제의 성장 동력은 꺼져 가는데도 노무현 정부는 ‘분배 없이 성장 없다’며 시혜적 복지확대에 매달려 왔다. 내년 예산안 238조5000억 원 가운데 사회복지·보건 분야 예산은 올해보다 10.4% 늘어난 61조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예산을 늘린다고 복지가 자동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는 어느 나라에서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수반하기 때문에 어떤 분야보다도 지원 대상의 선정과 관리가 엄정해야 한다. 또 수혜 대상자가 국가의 지원을 받을지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 방식은 ‘서비스’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그러나 민생의 마지막 보호막이 돼야 할 사회안전망은 이처럼 곳곳이 찢어지고, 구멍 나 있다. 복지예산이 가야 할 곳으로 안 가고,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 자체보다 전달체계의 거래비용이 더 커지는 ‘정부 실패’의 전형이다. 정부는 복지예산을 부풀려 다수 국민을 세금고(苦)에 시달리게 할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예산이라도 진짜 빈곤층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복지 전달체계부터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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