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9·11 드라마

  • 입력 2006년 9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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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은 드라마의 보고(寶庫)다.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권력의 정점에서 대통령과 참모진은 언론과 숨바꼭질을 벌이며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위기상황을 헤쳐 나간다. 백악관을 다룬 드라마는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마틴 신이 대통령 역을 맡은 드라마 ‘웨스트 윙’은 2006년 에미상을 휩쓸었다. 요즘은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등장시킨 ‘커맨더 인 치프’가 국내 공중파를 타면서 제법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 집권기의 백악관을 다룬 ‘웨스트 윙’에는 공화당을 조롱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9·11테러 5주년을 맞아 미국 ABC TV가 방영한 미니시리즈 ‘9·11로 가는 길’은 빌 클린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낳고 있다. 민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10일(현지 시간) 방영된 1회분은 클린턴 정부가 1993년 세계무역센터 1차 테러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할 기회를 두 번이나 놓쳤다고 암시한다.

▷9·11테러의 씨앗이 클린턴 정부 때 잉태됐다는 주장이 새로운 건 아니다.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공군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패터슨 중령은 전역 후 ‘클린턴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어떻게 약화시켰나에 관한 목격자 증언’이란 책에서 9·11테러는 클린턴 정부의 안보불감증이 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탐사전문기자인 리처드 미니터는 ‘빈 라덴을 놓치며’라는 책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수집한 테러정보가 르윈스키 스캔들에 시달리던 클린턴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증언을 기록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이 드라마를 ‘우익의 음모’로 규정했지만 ABC방송은 ‘드라마는 9·11위원회 보고서 등 여러 출판물과 인터뷰를 참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게임은 진행형이다. 조지 W 부시 정부 아래서 일어난 9·11테러에 민주당이 얼마나 책임져야 할지는 미국의 문제다. 그러나 9·11 드라마 공방을 보며, 노무현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다음 정부 이후에 어떤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지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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