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두 친구 이야기’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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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공부는 잘했지만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너무 가난한 집안 탓이라고 여겼다. 불만이 많았다.

명문대에 들어간 그는 운동권이 됐다. 그에게 ‘운동’은 자신의 집안을 가난으로 내몬 사회구조와의 싸움이자 가난으로 그을린 어린 날부터 쌓인 울분의 배출구였다.

대학 4학년이 되면서 그는 회의에 빠졌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요원했다. ‘시골 수재’에 대한 집안의 기대도 저버리기 어려웠다.

2년여의 공부 끝에 고시에 합격했다. 곧이어 서울의 부잣집에서 중매가 들어왔다. 친구들에게 신부를 소개하는 날, 예비 장인의 대형차를 몰고 나온 그는 이미 대학 시절의 A가 아니었다.

A의 ‘변절’을 지켜본 운동권 B가 있었다.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한 그는 고민 끝에 기성 정치권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의도의 바람은 차가웠다. 금배지는 알아줘도 배지 없이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젊은이는 알아주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A 같은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만 같았다. 울분이 쌓여 갔다.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에서 “우리가 정권만 잡으면 확 바꾸겠다”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정권을 잡았다. 생전 알지도 못한 고향 친구, 학교 선후배들에게서 전화가 빗발쳤다. 그의 지갑엔 항상 빳빳한 10만 원짜리 수표가 가득했다. ‘A 같은 친구들이 편하게 살 때 고생했으니 이 정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정부에선 벤처 파동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에선 도박 광풍이 불었다.

두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벤처와 도박은 대박을 꿈꾼다는 면에서 통한다. 두 정권 모두 불가능해 보이던 대선 승리로 대박을 터뜨렸다.

김대중 정부 출범 전후 적지 않은 운동권 출신이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 더러는 취직 연령이 넘어서, 더러는 대기업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벤처에 투신했지만, 급하게 자신의 처지나 사회를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벤처사업과 ‘운동’은 통하는 면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파동은 조급한 ‘대박의 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빚어진 사회병리의 전조였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부터 도박에 가까웠다. 가능성 없었던 승률, 극적인 단일화와 대선 전날의 파기, 승부사 노무현의 마지막 승리까지….

그러나 도박은 심각한 사회병리라는 점에서 벤처와는 성격이 다르다. 벤처의 꿈엔 자기 노력이 담겨 있지만 도박엔 세상에 대한 분노, 노력 없이 단숨에 이루려는 허황된 꿈, 뻔뻔한 자기 합리화가 있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주류세력 교체론’에서 나타난 세상에 대한 울분, ‘세금폭탄 아직 멀었다’ 식의 분노, 급하게 동북아균형자나 전시작전통제권자가 되려는 허황된 꿈, 코드 낙하산 보은 인사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끝없는 자기 합리화는 이 정권의 도박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권 출범 초 로또 광풍이 분 것은 경고음이었다.

A는 분노로 세상을 바꾸려다 자기를 바꿨다. B의 분노는 ‘내가 하면 옳다’는 자기 합리화로 바뀌었고, 합리화 때문에 경고음을 듣지 못한 그는 결국 추락했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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