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김근태의 의미 있는 몸부림

  • 입력 2006년 8월 2일 2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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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자주 만납시다.”

창당 후 지금까지 33개월간 재계와 네 차례 만난 열린우리당 측은 간담회 말미에 늘 이렇게 말했지만 그뿐이었다. ‘개혁대상’인 재벌의 뒷돈을 더는 받지 않는다고 강조하기 위해, 또는 스스로 서민정당을 표방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운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여당과 경제를 현장에서 이끌어가는 재계 간에 대화가 끊기거나 부실하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 파악도 어려울 것이다.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시장경제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할 맛 나는 세상을 만든다’는 정강(제2조 잘사는 나라)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제로 기업을 ‘춤추게 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구호일 뿐이다.

이번에 김근태 의장 등 여당 지도부가 재계와 연쇄 간담회를 갖고 ‘서민경제 살리기’ 행보에 나선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당-정-청(黨-政-靑)이 함께 뛰지 않는 게 국민을 답답하게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부처들이 제 발목 잡고 있으니, 선거를 치르며 민심에 두려움을 느낀 여당 측이 앞장서는 건 자구책(自救策)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 의장이 대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하자 여당 내에서 곧바로 반발이 나왔다. 5·31지방선거 참패 후 여당이 ‘서민과 더 멀어지고, 우향우(右向右) 한다’는 내부공격이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던, 재벌과 특권층을 위한 정책들’이란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며 내놓은 정책 중에 결과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에 도움을 준 게 있는가. ‘균형발전’을 내세워 대기업과 수도권을 압박했더니,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 좋아지던가. 기업인들에게 법에도 없는 창피를 주어 의욕을 꺾었더니, 서민 수중에 돈이 들어가던가. 재벌 대기업을 사사건건 괴롭혔더니, 중소기업 경영 형편이 좋아지던가. 세상을 노(勞)와 사(使), 서민과 부자로 쪼개고 법도 그런 관점에서 비틀었더니, 성장동력이 되살아나고 서민 살림이 활짝 피던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재계를 보는 여당의 시각이 조금씩 바뀌어 왔다는 점이다. 2004년 8월엔 “참여정부의 경제철학이나 개혁에 어긋나는 정책에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거리를 뒀지만 올해 3월엔 “투자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자고 기업에 호소하고 있다. 현실화요 진보다. 이번 간담회 시리즈를 통해 ‘열린우리당은 반(反)기업도, 반(反)시장도 아니다’는 인식을 기업과 국민에게 심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투자활성화가 급하긴 하지만 ‘얼마나 늘릴지 말해 달라’는 식의 실적 조급증은 고쳐야 한다. 규제완화만으로 투자와 일자리가 부쩍 늘어날 것으로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규제완화는 정부와 정치권의 당연한 임무인데, 마치 특혜를 주듯 생색을 내는 것도 문제다.

김 의장이 ‘당장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거론하자 한나라당이 모처럼 박수를 보냈다. ‘집권야당’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한나라당이 한낱 구경꾼이 아닌 바에야 경제 살리기, 일자리 더 만들기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해야 한다. 오랜만에 여야 간에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쟁과 타협의 장(場)이 선다면 나라에 희망이 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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