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코드’에 춤추는 교육대계

  • 입력 2006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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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내정자가 18일 인사청문회에서 외국어고의 학생선발 지역제한 시행을 3년 유예하겠다고 밝혀 외고 파문은 일단 수그러드는 형국이다.

김 내정자는 외고 지역제한 조치는 그대로 추진하되 정책 예고기간이 충분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시도교육감과 외고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김진표 부총리가 “외고는 실패한 정책”이라며 외고를 옥죄는 정책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교육부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김 내정자와 교육부가 외고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다행스럽지만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보여 준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외고의 지역제한이 유예될 것 같다는 언론 보도에 반박 자료까지 내가며 대응하던 교육부는 이날 청문회가 끝난 뒤 ‘김 내정자의 발언은 2010년까지 유예하겠다는 뜻임을 확인했다’고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일부 간부는 청문회 내용이 어떻게 보도되는지 귀동냥을 하느라 한밤중까지 탐색전을 펴기도 했다.

교육부가 ‘지역제한 유예’를 부각시키려 애를 쓴 것은 김 내정자 두 딸의 외고 전·편입학 문제를 ‘물타기’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김 내정자는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사전 협의했다는 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교육부 간부들은 김 부총리가 외고 지역제한을 강행할 때 반대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다 김 내정자의 말 한마디에 태도를 바꾸면서도 태연했다. 이들은 외고의 지역제한 조치를 독자적으로 추진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개념도 모호한 ‘개방형 자율학교(공영형 혁신학교)’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 작품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육부가 주요 정책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참여정부가 ‘코드’를 강조하고, 이에 순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김 부총리도 소신을 펴지 못하고 ‘코드행정’을 하다 불명예 퇴진하는 신세가 됐다.

김 내정자의 말대로 외고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이를 방치한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교육부가 외고 정책 혼선에 대해 반성은커녕 ‘코드’만 좇는다면 이 나라의 교육대계는 없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인철 교육생활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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