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라제브에게 희망을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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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브 모하메드 마하무드는 올해 23세인 이집트 출신 근로자다.

그는 요즘 한국말 배우기에 열심이다.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인을 증오했다. 경기 안산시의 한 공장에서 허리를 다치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하면서부터였다. 운신조차 못하던 자신을 내팽개치듯 거리로 내쫓은 한국인 사장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치가 떨렸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을 찾게 됐고, 무료로 수차례 수술을 받은 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몇 달에 걸쳐 정성껏 자신을 보살펴 주는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에게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라제브의 사연을 접하면서 지난해 여름 네팔 카트만두에서 만났던 초부 부르가티라는 청년이 떠올랐다.

부르가티는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반을 피하기 위해 담장 밖으로 뛰어내리다 철판에 왼쪽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기회의 땅으로 여겼던 한국에서의 8년이 그에게 남겨 준 것은 병들고 지친 육신뿐이었다.

“법을 어긴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약을 주고 붕대를 감아 주던 한국인의 인정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한국에 대한 기억을 전하는 부르가티의 얼굴엔 착잡한 표정이 가득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는 34만600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만1000명이 불법 체류자다.

취업비자가 있는 체류자는 한국인의 연대보증 아래 병원에 들를 기회라도 있지만 불법 체류자는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작업중 재해를 입은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에서만도 한 해에 200∼250명에 이른다. 연고도 없는 이국땅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한 많은 생을 접는 것이다.

그나마 몇몇 순수 민간 사회복지 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망자가 훨씬 늘어났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이 22일 개원 2주년을 앞두고 자금난으로 문을 닫을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 권익보호 운동가인 김해성 목사가 주도해서 모 교회와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2004년 문을 연 이 병원은 그동안 3만5000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무료 치료했다. 요즘도 33개 병상이 중환자들로 가득 차 있고 200여 명의 환자가 병원 내 ‘쉼터’에서 숙식하며 역시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월 500만 원의 후원금으로는 월 6000만∼7000만 원에 이르는 운영비와 치료비를 대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3억 원의 빚을 안고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개발경제 시대에 우리 부모 세대는 달러를 벌기 위해 낯선 외국 땅에서 광원으로, 간호사로, 노동자로 피땀을 흘렸다. 이들의 고생 덕분에 우리는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런 성공 신화를 배우러 온 외국인 근로자에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치료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가 있을까.

반병희 오피니언팀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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