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불신 자초하는 건설교통부

  • 입력 2006년 6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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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부녀회가 아파트 값 폭등을 주도한 주범으로 정부에 고발당했다. 고발 내용은 이렇다.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른 일부 지역의 부녀회가 아파트 값을 올리기 위해 매도자와 인근 부동산 업소에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정부는 수도권 아파트 값의 상승에는 부녀회의 조직적인 담합 행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이달 초 부녀회의 담합 행위를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녀회의 담합 행위는 건전한 시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김용덕 건교부 차관)라고 비판했듯이 정부는 부녀회의 담합 행위를 불법 행위로 보고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부녀회와 정부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몇 해 전에 부녀회가 아파트 값을 담합해서 올리는 주범으로 찍혀 ‘공공의 적’이 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해서 유야무야되었다. 이번에도 담합 행위를 처벌하는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만 처벌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발을 뺐다. 대신 건교부가 나섰다. 건교부 관리들이 나서 ‘집값 담합을 근절하겠다’고 다짐했다. 법을 고쳐서라도 범죄 행위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부녀회는 담합으로 의심을 사는 행위를 삼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정부가 단속과 처벌에 나서겠다고 말을 앞세우는 것 역시 성급하다. 우선 담합인지 아닌지 실태부터 꼼꼼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단속 공무원을 늘려 대대적인 단속을 하면 담합이 사라질 것으로 보는 것은 안이한 태도이다. 과연 그렇게 될지 의문이고 그런 식의 집중 단속이 바람직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겉으로 드러날 만큼 노골적인 담합은 사라질 테지만 음성적인 담합은 여전할 것이고 왜곡된 시장에서 약자만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담합했을 경우 과연 아파트 값에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도 살펴야 한다. 부녀회가 나서서 집값을 올리자고 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그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지는 불확실하다. 아파트 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효과를 내지만 하락 분위기에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누군가가 몰래 팔려고 나설 것이고 담합은 유지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담합이 시장의 힘을 이기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굳이 행정력을 낭비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처벌을 강행할 필요가 있을까.

무주택자나 세입자의 고통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부녀회를 두둔할 생각은 더욱 아니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를 보아 왔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세입자를 도우려고 짓는 임대주택이 되레 세입자를 울리고, 임차인을 위해 제정했다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에게 더 불리한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건설교통부에는 부녀회 단속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 예컨대 부녀회 담합을 따지기 전에 담합을 통해 분양가 폭리를 취했던 건설회사의 불법 행위부터 단속해야 한다. 건설회사의 담합조차 단속하지 못하면서 부녀회까지 단속의 손을 뻗치는 것은 과잉 행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건교부는 부녀회 담합 처벌을 거듭 다짐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없다. 말로만 협박하는 식이었다면 부녀회에 대한 모욕이다. 이런 식의 정부 방침이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집값 하락에 대한 과잉 집착, 세금대책 집중, 공급대책 부족 등과 함께 시장에 대한 과잉 개입이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건교부는 어떤 정책이라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과잉 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전임 정부에서는 왜 무리한 일이라고 포기했는지를 곰곰이 따져 보기 바란다. 거기에 부동산 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해답이 있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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