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죽은 사람이 무섭긴… 산사람이 더 무섭지

  • 입력 2006년 6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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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인 가톨릭대 한승호 교수.
해부학자인 가톨릭대 한승호 교수.
“죽은 사람이 무섭지 않으세요?”

해부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난 웃으면서 대답한다.

“산 사람이 오히려 무섭죠. 죽은 사람은 사람을 해치지 않잖아요.”

사실 의대를 졸업한 뒤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연구한다고 하면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간혹 동료의사들조차 해부학을 이미 다 밝혀진 고전으로 생각하고 연구주제를 분자생물학이나 인간복제 같은 ‘멋진’ 분야로 옮겨볼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인체의 신비’란 제목으로 사람 몸속을 보여 주는 전시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죽은 사람의 몸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게 하는 ‘플라스티네이션’ 기술은 우리 연구실도 이미 갖고 있다.

플라스티네이션 표본을 제작할 시신을 인도받으면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고정액을 주입해 부패를 막는다. 그리고 원하는 부위를 해부한 다음 수분 대신 화학약품(에테르)을 채워 넣는다. 마지막으로 에테르를 합성수지로 바꿔주면 완성.

플라스티네이션 표본은 보통 포르말린 같은 화학약품에 보관해둔 것보다 의대에서 실습하기에 더 적합하다. 포르말린처럼 역한 냄새가 나지 않고 손에 묻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구히 변하지 않고 고무장갑 정도의 탄력도 유지된다.

심장 크기의 장기는 표본 제작에 대략 3개월이 걸린다. 시신 한 구 전체는 10∼12개월이 필요하다. 표본 제작이 가장 어려운 부위는 신경. 수많은 미세한 신경가지들까지 일일이 해부하기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플라스티네이션은 장기나 근육, 뼈 등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명의들의 수술기법을 따라 배우거나 새로운 수술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고고학 분야에서 미라를 보존하는데도 요긴하다.

시신을 플라스티네이션으로 보존하려면 일반적인 기증 절차 이외에 유가족들에게 시신이 영구히 남아 교육에 활용돼도 좋다는 동의를 추가로 얻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기증 시신의 약 20%가 플라스티네이션 제작에 동의한다.

우리가 플라스티네이션 표본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은 기증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발달한 성숙한 사회분위기 덕분이다.

한승호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장

hsh@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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