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북한의 선거 훈수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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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생들과 함께 금강산에 다녀온 고교 교사 K 씨. 여행 도중 북한 안내원과 입씨름을 벌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씁쓸하다. 이 안내원이 갑자기 5·31지방선거를 거론하며 “반민족 파쇼집단인 한나라당이 이기면 안 된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이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당해진 K 씨가 “우리는 민주화된 나라라 그렇게 못 가르친다.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를 떠나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고 반박해 잠시 설전이 벌어진 것.

▷주요 선거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간섭해온 북한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훈수’를 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18일 ‘남조선 동포형제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나라당이 승리하면 미국에 추종하는 전쟁머슴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며 “진보세력에 표를 몰아주라”고 촉구했다. 북한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어제 “이번 선거는 6·15공동선언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사이의 첨예한 대결”이라며 “한나라당이 승리하면 6·15가 날아가고 북남관계가 대결 상태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개된 북한의 선거 개입은 1987년 대선 직전 발생한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이 처음이다. 이 사건은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어 1992년 대선 때는 이선실 간첩단 사건이 대선 정국을 강타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는 며칠간 수백 명의 병력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투입해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김대중 후보 지지 편지가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의 훈수와 달리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고, 그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무슨 트집이나 잡지 않을지 걱정이다. 북한에도 선거가 있지만 단일 후보를 놓고 찬반을 묻는 데다, 비밀투표의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아 ‘선거’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 선거에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너나 잘하세요”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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