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유엔 분담금 세계 11위의 자부심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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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퀴즈 하나.

유엔의 정규 예산 분담금을 많이 내는 국가를 순서대로 고르시오.

(1)미국 (2)일본 (3)중국 (4)러시아 (5)프랑스 (6)한국 (7)호주 (8)유엔에 가입한 아프리카 대륙 국가 전체

정답은 (1)-(2)-(5)-(3)-(6)-(7)-(4)-(8)이다. 뉴욕특파원으로 유엔을 취재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는 워낙 가난해서 그렇다고 해도 한국이 러시아보다 유엔 분담금을 많이 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때 미국과 경쟁하면서 국제정치를 좌우했던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다. 지금도 유엔에서는 모든 문서가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번역되고 있다. 모든 회의도 러시아어로 동시통역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대표단은 굳이 영어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은 유엔 정규 예산의 1.8%(약 3200만 달러)를 분담해 분담률 순위에서 11위. 반면 러시아는 전체 예산의 1.1%를 분담해 15위에 그치고 있다. 미국이 22.0%로 1위이고, 일본은 19.5%로 2위다. 프랑스는 6.0%로 5위, 중국은 2.0%로 9위다. 아프리카 회원국은 모두 합쳐도 0.472%에 불과했다.

유엔 분담금은 각국의 경제 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 등을 기초로 액수가 결정된다.

그런데 국내총생산(GDP)으로 표시되는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은행의 2004년 통계기준으로 6796억 달러. 세계 11위다. 러시아 GDP는 5823억 달러로 15위다. 유엔 분담금 규모가 한 국가의 경제 규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엔 분담금도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많이 부담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래도 191개 회원국이 모여 있는 유엔을 취재할 때 한국이 유엔 분담금 11위 국가라는 사실은 기자에게도 적지 않은 자부심을 안겨 주었다.

미국에서 미국인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한국 하면 ‘북한 핵 문제’나 6·25전쟁을 연상하는 미국인이 많은 상황에서 “혹시 한국이 세계에서 11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기분이 좋았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낯선 미국 학교생활에서 위축감을 느끼는 초등학생 딸에게 “한국의 경제 규모가 전 세계에서 11위다(Korea is the 11th largest economy)”라는 말을 영어로 알려주면서 가끔 필요하면 써먹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 이처럼 경제 규모가 커진 것은 무엇보다 그동안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1960년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가 한국이었다.

지난달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세계 각국의 경제 규모를 추산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구매력 평가 GDP(각국의 GDP를 달러로 표시할 때 시장 환율 대신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한 것) 기준으로 중국이 미국을 제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한국은 앞으로 14년 안에 구매력 평가 GDP에서 캐나다와 스페인을 제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표심 잡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또 얼마 안 있으면 대선 정국이 도래할 것이다. 한국처럼 정치권력의 힘이 큰 국가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는 데 정치 리더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을 10위, 나아가 8위, 7위의 경제대국으로 키울 수 있는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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