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정갑영]‘사면초가의 대학’ 자율로 구출하라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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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4월은 스산하기만 하다. 봄마다 화사한 꽃으로 치장하지만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학생들의 학내 투쟁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는 본관이 점거당했고 고려대는 보직 교수들이 억류되는 등 많은 대학이 큰 진통을 겪고 있다. 등록금에서부터 재단 개혁과 학사제도, 양성 평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그 많은 요구를 대학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한국의 대학들은 지금 어느 것 하나도 손쉽게 뛰어넘기 힘든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 있다. 대학의 현실을 조금만 상세히 들여다보면 암담하기만 하다.

첫 번째 벽은 극도로 취약한 재정이다.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대체로 70%를 넘고 있다. 등록금은 세계 명문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데 학생들이 기대하는 교육 서비스는 선진국에 맞먹는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마냥 올릴 수도 없고 기부금이 풍족하거나 정부가 재정 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물론 기여 입학은 아예 금지되어 있다. 이런 환경이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대학 재정이 빈사 상태에 빠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두 번째 벽은 이보다 훨씬 높다. 대학 지원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수험생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조기유학을 떠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미국과 동남아시아는 한국계 학생들로 북적이지만 국내에서는 벌써부터 미충원율이 30%를 넘는 대학도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문을 닫는 대학이 여기저기서 나타날 것이다.

세 번째 벽은 경직된 규제다. 헌법에는 엄연히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학사제도와 정원은 물론 대학 자율의 첫 출발인 자율적인 신입생 선발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본고사는커녕 논술에 영어 단어가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선진국에서는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교육 혁명이 진행 중인데, 우리는 신입생 선발까지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벽은 유능한 교수마저 한국을 등지는 현상이다. 이미 상경계열과 일부 공학계열에서는 일류 교수의 신규 채용이 어렵고 국내 대학 간 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급여 수준이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자녀의 교육 환경까지 열악해 귀국을 꺼리기 때문이다. 반면 교수의 연구 업적에 대한 사회적 요구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재정은 취약한데 학생은 줄어들고 자율권도 없는 상태에서 우수한 교수마저 뽑지 못한다면, 한국의 대학은 어디에서 경쟁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작은 우물에서 하향 평준화만 심화될 것이다.

이런 사정은 외면하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물리적 집단행동이 연례행사로 정착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매년 되풀이되다 보니 이제는 언론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오히려 학생과 대학 당국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책을 바꾸고, 미래의 경쟁력을 논하며, 사면초가의 대학을 구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우리 대학을 숨이라도 쉬게 할 수 있겠는가. 그 답은 대학의 자율화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몇십 년 지속된 대학 정책의 패러다임을 자율과 글로벌 경쟁으로 과감히 바꿔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정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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