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지갑단속 전략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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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는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옛 소련 전복 프로그램을 입안했고, 지금은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0년 조지 W 부시 정권 출범 직전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북한 군사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사실은 ‘북한 돈줄 죄기’였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연간 5억 달러로 추산되는 위조달러, 마약, 미사일 거래를 통한 불법자금이 전면 동결되자 북한 지도부의 통치자금이 끊겼다. 여기에다 첨단무기 부품을 사들이지 못하니 대량살상무기의 제조 판매가 불가능해졌다. 최근 방북인사들은 북한 관리들이 “죽을 맛”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전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국의 금융제재 때문에 체제가 붕괴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고 뉴스위크 최신호가 ‘지갑단속’이란 기사에서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 경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3년 전부터는 북한의 불법자금 차단을 위한 범(汎)부처 합동작업을 벌여 왔다. 치밀한 그물망을 준비한 것이다. 우리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제재가 예상 밖의 효과를 거두자 미 행정부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6자회담 무용론’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활로가 막힌 북한은 중국에 더 기울고 있다. 중국의 대북투자는 2003년 1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 달러로 급증했다. 양국 무역 규모는 지난해 16억 달러로 남북교역(11억 달러)을 웃돌았다. 중국은 무산광산 50년 채굴권도 따냈다. 북한이 중국의 ‘경제속국(屬國)’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북한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3년 버티기’에 들어갈 채비를 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오산(誤算) 같다. 행정부가 바뀌어도 미국의 대외전략은 급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걱정은 우리 정부가 ‘민족끼리’를 앞세워 북한의 ‘버티기’를 돕다가 화근(禍根)을 키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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