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양극화 장사’에 기업 동원 말라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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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해소’ 공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기업인들에게) 우는소리도 좀 하겠다”고 말한 뒤 정부 여당이 ‘과장된 양극화’를 만악(萬惡)의 근원인 양 몰아가니 기업인들도 마음이 편치 않고 ‘어떻게 성의 표시를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한다는 얘기다.

경위야 어찌됐건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가 8000억 원을 사회에 내놓기로 한 것도 다른 대기업들에 부담이 됐다. 현대·기아자동차, SK, LG, 한진 등 주요 그룹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참신한’ 사회공헌 방안을 짜내느라 골치 아파 하는 모습이다. 일부는 다음 달부터 ‘보따리’를 풀 것이라고 한다. 어떤 대기업 오너 회장은 봉사단장을 직접 맡기까지 했다.

이들 대기업도 1980년대 이후 사회적 요구를 의식해 사회공헌을 늘려 왔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영리추구 외에 국민복지 증진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부분적으로 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옆구리를 찔러 비(非)자발적 사회공헌을 사실상 강요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기업으로선 세금을 더 내는 것과 다름없다. 대기업에 양극화 확대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저소득층 지원에 돈을 쓰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을 떠넘기는 행위다. 투자, 고용, 납세를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에 사회안정 책임까지 맡기는 셈이다.

게다가 곧 선거가 있다. 정권은 ‘양극화 장사’를 하며 지지층에 선물을 뿌리고, 그 값을 기업들이 뒤따라가며 치르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지난 3년간 온갖 규제와 기업 때리기로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그 결과로 저성장에 빈곤층이 늘어나자 기업들에 직접 돈을 내라고 한다면 투자의욕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R&D) 등 투자 확대와 좋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공헌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대통령부터 기업에 ‘우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을 그만 들볶고 제 역할이나 열심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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