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내 ‘갈등과 업무 중복’에 血稅 녹는다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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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정부 부처 간, 또는 국가기관과 자치단체 간의 갈등 및 업무 중복이 도를 넘어섰다며 특별감사를 하기로 했다. 예비조사에서 드러난 사례 205건을 보면 과연 같은 정부 안의 기관들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조직 이기주의’가 극심하다.

정보통신부 노동부 행정자치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4개 부처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정보화 격차 해소 사업만 봐도 그렇다. 행자부와 정통부는 전자정부 업무 추진 사업을 놓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통부와 방송위원회는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 상용화 사업의 주도권 다툼에 매달리고 있다. 정부는 2003년 ‘전자정부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자랑했지만 업무 중복과 이에 따른 국정 비효율 때문에 수백억 원의 세금이 낭비됐다니 ‘탁상 로드맵’이 무슨 소용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분권주의’ 국정철학이 기관 간 갈등과 업무 중복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은 ‘자율’과 ‘분권’을 강조하며 정부 내의 상호 권력 견제와 통제를 제도화하려 했다. 그러자 기관마다 살아남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짜고 정책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일이 체질화, 일상화됐다.

부처 위에 옥상옥(屋上屋)으로 군림하다시피 해온 청와대 각종 위원회, 그리고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과 각종 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한 것도 문제다. “시스템이 곧 정부의 일인자”라는 말은 그럴듯했지만, 실제로는 조정 시스템이 거의 작동되지 않았음이 감사원 예비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국무조정실은 그동안 무얼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감사원을 향해 “감사원은 조정기관이 아니다”고 하는지, 듣기 딱할 지경이다.

일부 실세(實勢)가 권력을 틀어쥐고 국정을 좌지우지해서도 안 되지만 ‘분권정치’라는 미명 아래 갈등과 비효율, 무능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이로 인한 예산낭비와, 그 낭비를 메우기 위한 혈세 쥐어짜기가 갈수록 국민을 힘겹게 만든다. 정부는 증세(增稅)를 외치기 전에 정부 안의 갈등과 업무 중복에 따른 비용부터 줄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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