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세영]토종기업 있어야 산업경쟁력 높아져

  • 입력 2006년 2월 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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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정부와 협상을 하다 보면 이 나라 엘리트 공무원들이 외국자본에 대해 가지는 묘한 이중적 태도를 발견한다. 공식 협상 테이블에서는 외국인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도 저녁에 한잔 걸치고 마음을 털어놓으면 미국자본의 지배를 은근히 걱정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멜 워킨슨 보고서’(1971년)에서 보듯 한때 미국자본에 의한 캐나다 경제의 종속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고조된 적도 있다. 가장 개방적 국가인 캐나다가 이웃 미국자본에 대해 이 같은 애증을 가지는 것은 외국인투자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시비 때문이다.

요즘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우리은행장이 내건 ‘토종은행론’이 외국계 은행장들이나 개방주의 학자들로부터 융단폭격을 맞았다. 공적자금을 받아 꾸려 나가는 은행 주제에 경영이나 잘하지 한가하게 “한국인이 소유한 토종은행이 외국계 자본보다 좋다”는 시대착오적인 소리나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헤르메스의 주가 조작 사건이 터졌다. 삼성물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리고 이에 따른 주가 조작으로 80여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것. 소버린의 씁쓸한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외국자본에 의한 스캔들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이쯤이면 아무리 국경 없는 지구촌 경제시대라고 해도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솔솔 흘러나올 만하다. 특히 은행산업의 경우 1997년 16.4%에 불과하던 외국인 지분이 60%를 훌쩍 넘어섰고 외환 제일은행 등 주요 은행의 경영권 자체가 아예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더욱이 이번 헤르메스 사건까지 터졌으니 토종은행론이 힘을 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너무 성급히 외국자본에 대해 색안경을 써선 안 된다. 국내 학자들이 다양한 실증분석을 해보았지만 소버린, 헤르메스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흔히 우려하듯 외국계 은행이나 펀드가 외국인 주주의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여 금융의 공적 역할을 게을리 한다는 뚜렷한 결과를 찾을 수 없다. 또한 외국계 은행들이 주장하는 선진경영기법의 도입 같은 긍정적 효과도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외국의 연구를 살펴보면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멕시코나 브라질 등 중남미의 경우 강력한 토종기업의 존재 유무가 외국기업의 행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강한 현지 기업이 있는 산업에서는 외국기업이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본사에서 좋은 기술도 가져오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일단 해당 산업에서 토종기업의 씨가 말라버리면 행태가 달라져 마음껏 독주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예가 산업 자체를 몽땅 외국인 손에 넘겨 버린 후 삼류 수준을 못 벗어나는 중남미의 자동차 및 은행업이다.

중남미의 경험이나 이번 헤르메스 사건에 비추어 볼 때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외국 자본(특히 투기성 자본)에 대한 ‘실효적 통제(effective control)’가 거론될 만하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투자 장벽이나 정부 규제로 변질되기 쉽다.

토종은행론이 반외국자본 정서로 이어져서는 안 되지만 이를 유치한 경제국수주의로 몰아붙이는 것도 좋지 않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시장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외국인 투자는 더욱 개방하되 각 분야에서 튼튼한 토종기업과 외국기업이 시장에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히 국민경제의 젖줄인 은행산업에선 이 같은 선의의 경쟁이 더욱 필요하다. 마치 현대와 GM이 서로 겨루며 우리 자동차산업을 세계 정상으로 이끌고 있듯이….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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