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순갑]생명공학, 전자산업 전략 벤치마킹을

  • 입력 2006년 1월 1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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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미국에서 생명공학자로 26년간 일하면서 관련 기업 3개사(노바트릭스, 아비큘, JCSS바이오메디컬)를 설립해 현재 경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 과학계의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힌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논문 조작 사건을 계기로 한국 생명공학의 발전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한국의 생명공학계는 어떤 발견이나 개발을 철저한 검증 없이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매년 10개 이상 ‘세계 최초’의 발견이나 개발을 했다고 발표한다. 언론도 그대로 받아쓴다.

필자는 이 ‘세계 최초 신드롬’을 한국 과학계의 검증 능력 부족과 선진국의 생명공학산업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해석한다. 생명공학계에서 세계 1위 또는 최초가 되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한두 명의 천재와 2∼3년의 짧은 기간으로는 불가능하다.

전 세계 생명공학 시장은 미국이 50%, 유럽과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이 40%, 기타 국가가 10%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시장 규모는 미국의 5%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생명공학 관련 제품 또는 기술을 개발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양국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국이 줄일 수 있는 것은 인건비 정도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의 생명공학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개발과 동시에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품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세계 생명공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첨단 기술 개발 방식을 한국이 고집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미국이 겪은 값비싼 시행착오의 전철을 밟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필자는 생명공학이 한국의 산업 중 성공 사례인 전자산업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1970, 80년대 한국 전자산업은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는 형태로 시작했다. 10∼20년이 지나면서 한국은 선진국을 앞서 나가게 되었는데 생명공학도 비슷한 전략을 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사업을 하든 기술, 자본, 인력의 3박자를 고려해야 한다. 향후 10년 정도 치밀한 계획하에 선진국의 생명공학 분야 중 단기간에 세계 수준을 바라볼 수 있고,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성공할 확률이 높은 첨단 의료기기 또는 약물 전달 시스템 등을 육성할 것을 권한다. 10년 후에는 첨단 생명공학을 할 수 있는 여건, 즉 기술력과 자본 및 인력이 마련될 것이다.

2004년 필자는 남캘리포니아 지역에 한국 생명공학기지를 설립하기 위해 한국에서 방문단이 갈 것이라는 기별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연락이 없어 어떤 후속 절차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이러한 전진기지의 설립이 한국 생명공학 발전에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제품허가법, 임상실험을 효과적으로 맡아 할 수 있는 인력 양성, 보충이 시급하다. 현재 선진국의 유수 제약회사, 생명공학회사들과 동등하게 협력사업 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한국 투자기관 또는 투자자들의 검증 능력도 열악하다. 미국의 유수 투자기관의 철저한 검증을 거친 사업 계획서도 10% 정도의 성공률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에 대한 기능 강화가 시급하다.

한순갑 미국 JCSS바이오메디컬 사장·유기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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