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승철]장밋빛 경제전망의 ‘암초’들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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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경제는 어떨 것 같습니까?” 민생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 사업계획을 구상 중인 기업인 등 너나 할 것 없이 경제 앞날에 대해 궁금해 하며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는 연말이다.

아침 식사 겸 강연을 듣는 조찬 간담회장. 한겨울이어서 오전 7시가 지나도 캄캄한데 벌써 청중으로 꽉 찼다. 대개 ‘2006년 경제 전망’이라는 주제가 붙어 있다. 꼭두새벽에 나와 출근 전에 뭔가 배우려는 중소기업 대표나 대기업 임직원이 주로 참석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듬해 경제를 전망하는 자료와 책자도 쏟아져 나온다. 경제성장률은 몇 %가 될 것이며, 원유가격과 환율이 어떻게 될지가 주요 관심사다. 이런 전망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기업이다. 설비를 늘려야 할지, 연구개발비로 얼마를 쓸지, 종업원을 더 뽑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므로 환율에 대해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대기업에서는 1년 후의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를 미리 그려 본다. 매출액과 이익을 어림잡아 보고 나쁜 그림이 그려지면 특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외국 경쟁업체의 움직임도 살핀다. 올해 영업 목표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받을 돈은 해를 넘기기 전에 받도록 채근한다. 이렇듯 기업에서는 연말이면 전쟁을 치르듯 강도 높은 업무가 이어진다.

나라 살림 계획을 세우는 기획예산처 공무원들도 예산 편성 작업을 할 때는 고생하지만 설마하니 민간기업 기획실 임직원보다 압박감을 더 받기야 하랴. 다른 경제부처 관료들도 나라 경제를 걱정하겠지만 그게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느끼는 이가 그리 많을까.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등 ‘철밥통’ 보유자들은 외환위기 칼바람이 몰아칠 때도 대다수가 무풍지대에 앉아 있지 않았나.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이 5.0%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민간 쪽에서는 이보다 약간 낮아 삼성경제연구소는 4.8%, LG경제연구원은 4.6%, 현대경제연구원은 4.5%로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 3.9%보다 나아질 것으로 예측해 다행스럽다.

민간 연구소는 전망치를 작성할 때 정치적 요인을 고려한다. 정치 안보 상황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듯하면 전망치를 낮춘다. 이를 흔히 “마사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외 발표 자료엔 이 부분은 굳이 밝히지 않는다. 권부(權府)에서 따지면 설명하기가 난감하고 혹 연구소가 속한 그룹에 괘씸죄를 묻는 치도곤이 내려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경제 내적 요인만 보면 새해 한국 경제는 대체로 올해보다 나을 듯하다. 내수가 조금 살아나고 수출도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고유가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경제 외적 요인이 발목을 잡지 말아야 4∼5% 성장률이라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내년 5월 31일 지방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2007년 말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정국에 접어들 것이므로 경제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높다.

경제는 어지러운 정치상황을 꺼리는 속성을 지녔다. 유세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대중영합주의 공약이 남발되기 십상이고 이는 결국 경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민생과 중소기업을 살린다느니, 대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느니 하며 정부가 앞장서 지원하겠다고? 지원 밑천은 결국 혈세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정부의 손이 너무 커지면 자원 배분이 왜곡된다.

‘활기찬 경제’로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표심(票心)’을 노린 정치적 계산, 민간을 옥죄는 것을 존재 이유로 착각하는 관료주의, 고통을 분담할 줄 모르는 공공부문의 이기주의를 내쫓으면 그 길이 훤히 뚫리지 않겠는가.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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