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혈세’란 말이 싫으면 세금 낭비 말라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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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대통령혁신관리수석비서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언론과 국회가 혈세(血稅)라는 표현을 자주 써 세금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혈세의 사전적 정의는 ‘가혹한 조세’인데 우리나라에 그 정도로 가혹한 세금이 있겠느냐”며 이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들어 늘어난 공무원 수가 줄잡아 2만3000명이다. 7월 말 현재 43개 정부 부처에서 별도 정원으로 파견 나가 있는 이른바 ‘인공위성’ 공무원만도 868명으로 1999년 말보다 86% 늘었다. 그렇다고 국민의 삶이 좋아질 만큼 행정서비스의 질이 나아졌는가. 전자민원서류 하나 제대로 관리·혁신하지 못한 정부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혈세 낭비에 대해 감사원 등 정부 부처와 여당도 문제를 지적하고,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비효율적 예산 집행 사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정부가 예산 낭비를 적발하는 ‘예(豫)파라치’에게 최고 3000만 원을 포상하기로 한 것도 낭비를 인정한 때문일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수석은 정부혁신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데 대한 반성부터 할 일이다. 그런데도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세금에 대한 생각을 혁신하라’고 가르치려 드니, 그의 봉급과 혁신관리 조직에 들어가는 예산부터가 ‘혈세’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수석은 또 “세계화 시대에 혈세를 부과하면 사람도 돈도 기술도 다 외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외국으로 떠나지 않는 국민에겐 어떤 세금도 혈세가 아니라는 주장인가. 이민도 못 갈 처지이면 군말 말고 참으라는 얘기인가.

‘혈세’라는 아우성을 두려워해야 한다. ‘혈세’ 소리를 안 들으려면 방만한 재정 지출과 불요불급한 국책사업을 줄이고 효율적인 작은 정부부터 꾸리는 것이 답이다.

이 수석이 ‘사전적 정의’ 운운하니 한 가지만 덧붙인다. 지난해 나온 한 국어사전은 ‘혈세=국민이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 낸 소중한 세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국민이 그렇게 사용 중인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국세청장까지 지낸 이 수석이 어떤 국민도 희생과 고통 없이 여윳돈으로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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