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효종]‘변신의 철학’ 감상법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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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교수 문제와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함으로써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천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검찰의 독립을 강력하게 옹호하던 모습과 판이하기 때문이다. 비판이 제기되자 천 장관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흔히 늙어가는 사람은 ‘세월이 빨리 흐른다’며 세월 탓을 한다. 하지만 흘러가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부부 싸움을 하면서 ‘사람이 변했다’고 할 때는 비난의 의미가 크지만 인간의 변화에는 감동적인 측면도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놀라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우리 주변에도 범죄 세계에서 손을 씻거나 노름에서 손을 끊는 등 심기일전하여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들 사례는 한결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변치 않음의 미학도 있다. 사람들은 졸업식 때 변치 않을 우정을 다짐한다. 기쁠 때나 괴로울 때를 막론하고 변치 않을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변치 않는 절개의 상징이라면 단연 소나무다. 소나무는 계절이 바뀌어도 늘 푸르다.

중요한 것은 변함이나 변치 않음, 그 자체가 아니라 원칙과 이유다. 사람들은 왜 변할까. 돈이나 사랑 때문에, 또 권력 때문에 변하는 일이 다반사다. 바람이 나서 아내에게 매정하게 대하는 남편은 사랑 때문에 변심한 것이고, 출세했다고 옛 친구에게 목이 뻣뻣해지는 것은 권력 때문이다. 천 장관의 변신은 무엇 때문일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을 상기할 때, 그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지 의문이다. 소신은 같은데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파우스트는 젊음 때문에 영혼을 팔았는데, 물론 천 장관이 그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해를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권력을 따라 돌기 때문일까.

지금 집권층은 입만 열면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또 대선에서 이겨 집권했으니 시대 정신을 차지했다고 한다. 유독 국민만 변하지 않았다고 불만이다. 마치 변화의 의미에 대해 유권해석을 할 특권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대 변화를 말하기 전에 정부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권력욕도 변한 것일까. ‘선출된 권력’에는 오만함이 없는 것인가. 참여정부가 집권 전부터 코드 인사를 하고 사회의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과거사 규명을 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코드인사를 하고 행정수도 이전을 주류층 교체로 정당화하는가 하면, 과거 청산 없이는 미래가 없다고 강변한다. 또 헌법 정신을 존중하겠다던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집권 초에 “국민이 대통령”이라며 겸손해 하던 것과는 너무 달라 이것이 과연 같은 정권인지 의심이 간다. 차의 문이나 타이어를 갈아도 우리는 같은 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을 갈면 같은 차라고 할 수 있을까. 외형이 같아도 내용이 너무 달라지면 정체성 파악에 혼란을 초래한다.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궁금해지는 것은 초심에 비해 달라진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현재의 참여정부는 2년 반 전에 국민이 선출한 정부와 같은 정부인가. 아니면 하나의 존재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다중인격체가 된 것인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과거에 공언한 원칙과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시대가 변했다고 한다면 ‘진실의 언어’보다는 ‘권력의 언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직을 맡은 후 다른 사람이 되는 것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변심한 애인의 모습을 떠올릴지언정 ‘돌아온 탕아’와 같은 진정성을 읽을 수는 없다. 상황이 변했다는 상황론자, 시대가 변했다는 시대론자는 권력에 취한 소피스트일 가능성이 크다. 정녕 진정성을 가진 공직자는 천연기념물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인가.

박효종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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