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96>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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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변화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는데 변화는 무슨 변화란 말이냐?”

패왕이 퉁명스레 되물었다. 용저가 제법 생각 깊은 표정으로 말했다.

“유방이 제 발로 산을 내려오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계략을 써서 산 아래로 꾀어내는 수도 있습니다.”

“이미 숨을 곳을 보아두었다가 자라 모가지처럼 움츠리고 숨은 겁쟁이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산을 내려오겠느냐? 또 교활하고 간사하기가 늙은 여우보다 더한 그놈을 이제 와서 무슨 수로 꾀어낸단 말이냐?”

패왕이 그렇게 꾸짖듯 말했으나, 달리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왕의 움직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늦기 전에 그곳이라도 차지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패왕은 곧 군사를 동(東)광무로 움직여 그곳에 진채를 쌓게 하였다.

성벽이나 보루(堡壘)에 기대 지키기만 하는 것은 원래 패왕이 즐겨 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이 뜻과 같지 못하니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깎아지른 벼랑을 사이에 두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100보밖에 안 되는 곳에 한나라 대군이 있어, 초나라 진채도 기습이나 야습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초나라 군사들도 나무를 베고 바위를 모아 진채를 든든히 했는데, 그 또한 산성(山城)에 견줄 만해 뒷날 그곳 사람들은 그 진채를 초성(楚城)이라 불렀다.

한군 진채가 들어선 서광무 맞은편 봉우리에 진채를 얽자마자 패왕은 군사들을 시켜 한왕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그 장졸들도 아울러 조롱하게 했다. 한왕이 조구에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화를 돋워 한군을 산 아래로 끌어내기 위함이었으나 어찌된 셈인지 한군 쪽에서는 대꾸조차 없었다. 모두 귀머거리인 양 진채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있었다.

참지 못한 패왕이 다시 용저와 종리매를 내려보내 한군 진채가 있는 서(西)광무의 서편 능선을 한 번 더 건드려 보게 했다. 두 맹장이 날랜 군사 5000명을 가려 뽑아 어둠 속에 산비탈을 쳐올라가 보았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조용하던 진채에서 벌 떼처럼 뛰쳐나온 한나라 군사들이 통나무와 바위를 굴리고 화살을 쏘아대 다시 적지 않은 군사만 다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다시 지루하게 달포가 흐르고 날은 어느새 섣달도 다해 가는 늦겨울이 되었다. 그날도 뜻대로 되지 않는 싸움 때문에 잔뜩 심사가 상해 있는 패왕의 군막으로 치속도위(治粟都尉·군량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낮술로 불콰해져 있던 패왕이 좋지 않은 예감으로 꾸짖듯 물었다. 겁먹은 치속도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군량이 다해 갑니다. 사흘 전부터 군량이 이르기를 재촉했으나 끝내 오지 않아 이제 남은 것은 100곡(斛)도 되지 못합니다. 먹는 양을 절반으로 줄여도 열흘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팽성에 있는 것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왜 제때에 군량을 보내지 않는 것이냐?”

패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욱 놀란 치속도위가 몸까지 떨며 더듬거렸다.

“팽성에서는 넉넉히 거두어 보내었으나, 도중에… 오는 길에 그만….”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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