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금동근]파리 백야축제와 서울 청계천

  • 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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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 토요일이던 1일 파리는 밤새 하얗게 빛났다.

백야 축제(Nuit blanche)가 이날 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보고 듣고 즐기자는 취지의 축제다.

파리 시가 마련한 행사는 예년에 비해 훨씬 다양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 쾨르 성당 앞 계단은 전자기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성당 안에선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청중을 사로잡았다.

시내 중심의 레알 근처 공원에선 삼바 춤 강습이 진행돼 마치 나이트클럽이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문학 애호가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 낭독회를 찾았고,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서 비디오 작품과 조명쇼를 즐겼다.

해가 거듭될수록 호응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시민과 관광객 120만 명이 밤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파리 시의 꼼꼼한 준비도 돋보였다. 자전거 2000대를 준비해 공짜로 빌려줬고 아침까지 무료 버스를 운영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파리 시의 행사는 이뿐만 아니다.

백야 축제가 가을을 여는 축제라면 6월엔 음악 축제가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매년 하지(夏至)에 열리는 음악 축제는 누구든 악기를 들고 나와 아무 데서나 연주를 하는 행사다. 올해는 파리 시내 1000여 곳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플루트 삼중주를 하는 가족에서 기타에 드럼, 건반악기를 갖추고 제법 그룹 모양을 낸 아마추어 밴드까지 각양각색의 연주가 길거리에 울려 퍼졌다.

8월 초에는 파리 시가 후원한 ‘달빛 야외 영화 감상회’가 파리 시내 유서 깊은 장소 13곳에서 열렸다. 주최 측은 영화가 상영되는 장소와 관련 있는 작품 15편을 골랐다.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영화를 본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매년 7월 중순부터 한 달간은 파리 시 20개 구에서 동네 축제가 열린다. 집 앞 공원에서 수준 높은 재즈, 힙합, 클래식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파리 시는 센 강 주변을 해변처럼 꾸미는 ‘파리 플라주’ 행사, 평소 관람료의 3분의 1인 3유로(약 375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파리 영화 축제 등을 마련해 한여름 도심 생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을이 되면 ‘문화유산의 날’이 기다린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비롯해 상원 회의실, 수도원, 수녀원, 개인 소유의 성(城) 같은 유서 깊은 건물과 명소들이 무료로 공개되는 날이다. 지난달 파리에선 각종 문화재와 박물관, 공공건물 1329곳이 개방됐다.

이런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파리 시와 프랑스 정부가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다. 어쩌면 이렇게도 아이디어가 많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 백야 축제 때는 캐나다 토론토, 스웨덴 스톡홀름, 체코 프라하,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온 대표단이 군중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축제의 전반을 배워가기도 했다.

센 강과 멋진 건축물이 어우러진 파리는 ‘하드웨어’ 자체만으로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도시다. 그 근사한 ‘하드웨어’에 수준 높은 콘텐츠까지 곁들여지니 파리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찾는 건 당연한 결과다.

파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소개할 때면 ‘이거다’ 하고 대표적으로 자랑할 만한 게 없어 고민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랑거리가 적어도 하나는 생겼다. 바로 복원된 청계천이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사진 속 청계천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하드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계천은 하천 복원을 추진 중인 파리 시가 모범 사례로 꼽으며 부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좋은 ‘하드웨어’가 처음 모습대로 잘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이런 ‘하드웨어’에 담아낼 수 있는 품질 좋은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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