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962년 獨 ‘슈피겔 사건’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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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8일. 여느 때처럼 월요일에 발간된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는 서독 군(軍) 방어 태세의 문제점을 지적한 22쪽 분량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로 인해 ‘워터게이트 사건’과 함께 언론이 국가 권력에 맞선 20세기 양대 사건으로 꼽히는 ‘슈피겔 사건’이 터질 줄은 이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잡지가 나온 지 18일째인 26일 밤 슈피겔 편집국에 수십 명의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창간인이자 발행인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 씨를 체포하고 수천 건의 서류를 압수했다.

죄목은 ‘국가기밀 누설죄’였다. 당시 분단국가였던 서독의 군사기밀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사실 몇 해 전부터 슈피겔과 정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슈피겔이 관리들의 뇌물 스캔들을 잇달아 폭로했기 때문이다.

눈엣가시를 뽑아낼 좋은 기회였을까? 권력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오만했다.

위대한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아우크슈타인 씨가 투옥되자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다. 나라 밖에서도 언론 탄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아우크슈타인 씨는 투옥된 지 103일 만에 풀려났다. 오히려 사건을 주도했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임기 2년을 남긴 채 사퇴했고 프란츠 슈트라우스 국방장관도 물러났다.

국가 권력은 완패했다.

슈피겔은 거울이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한 치의 일그러짐 없이 보도하겠다는 의지가 이름에 담겨 있다. 잡지는 독특한 문체, 탐사보도의 깊이,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비판정신이다. 이데올로기적 성향과도 무관했다. ‘슈피겔이 움직이면 관리들이 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로지 권력층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데 주력했다.

2002년 세상을 뜬 아우크슈타인 씨는 언론의 역할은 올바른 사실 전달이지 정치 투쟁이 아니라고 했다.

“저널리스트는 선거나 이기고 정당이나 후원하라고 위임장을 받은 게 아니다. 총리와 장관을 선출하거나 대연정(大聯政) 또는 소연정(小聯政)을 이끌어내려고 할 때, 즉 정치를 하려고 할 때 패자(敗者)가 된다”는 그의 말은 지금도 곱씹을 만하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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