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술은, 분말의 에센스인 약에 가까운 것이었다. 동양에서 술은 ‘백약(百藥)의 장(長)’으로 통했다. 세상의 어떤 좋은 약보다 몸에 좋은 것이라는 의미다. 술이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까지도 약과 꼭 같다. 그래서 술은 ‘백독(百毒)의 장(長)’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생로병사(生老病死) 인생살이의 애환을 달래는 술은 이처럼 이중적이다.
▷우리 서민의 술은 역시 소주다. 막소주 한잔에 고단한 하루의 노고와 피곤을 적시어 씻어 넘긴다. 시인의 표현처럼 ‘마알간 소주 한잔’으로 오늘의 통증을 희석하지 않으면 내일을 또 어떻게 맞을 것인가. 값싼 소주가 건강에 가장 ‘덜 해로운 술’이라는 사실 또한 어떤 섭리일지 모른다. 일본의 경우 해마다 소주 소비가 폭증세다. 의사들의 권유 때문이라고 한다. 청주 위스키 맥주보다 소주가 건강에 덜 해롭다고.
▷소주세(稅)는 몇 년 사이 배 이상 올라 있다. 원래 출고가의 35%이던 세율이, 위스키를 더 팔려는 유럽연합(EU)의 압력에 72%로 올랐다. 위스키 세율은 100%이던 것을 72%로 내려 결국 소주와 위스키 세율이 같아졌다. 소주 마시는 서민들이 그만큼 호주머니를 털린 셈이다. 이번에 다시 소주세율을 90%로 올리는 문제로 정부와 여당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부는 정작 세수(稅收) 증대를 노리면서도 짐짓 “국민의 건강을 생각해서”라고 말한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듯한 기만에 서민만 서럽다. 여당의 태도도 ‘말리는 시누이’ 같다. 방만한 재정부터 걸러야지, 소주세 인상만 말린다고 서민 편이 되겠는가.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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