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0년 말러 교향곡 8번 초연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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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정취가 짙게 남아 있는 남부 독일 바이에른의 주도 뮌헨. 초가을 대기 속으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듯 묘하게 들뜬 분위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신문은 시시각각으로 모여드는 명사들의 소식을 전했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 에드워드 엘가,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소설가 토마스 만, 슈테판 츠바이크, 프랑스 전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자동차왕 헨리 포드….

공연일인 1910년 9월 12일이 되자 도시는 긴장감으로 정적마저 감돌았다. 말러의 교향곡 8번의 초연(初演) 첫날이었다. 말러의 제자였던 브루노 발터의 회상.

“말러가 모습을 보이자 관객 전체가 일어섰다. 경의를 나타내는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신인지 악마인지 알 수 없는 이 사람, 말러가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음향이 무대의 빛 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향곡’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음향의 폭포수였다. 오케스트라에 171명, 독창자 8명. 성인 합창단 두 개와 아동 합창단을 합쳐 850명. 지휘자 1명. 모두 1030명이 무대에 섰다. 최후의 강렬한 화음이 사라지자 노도와 같은 함성이 장내를 휩쓸었다. 작곡가는 무대에 올라 어린이 합창단원 한명 한명과 악수했다.

“지금까지 내가 작곡한 음악을 모두 합쳐도 이 작품에는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주가 소리를 내고 메아리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말러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멩겔베르크에게 이 같은 편지를 보냈다. 평소 ‘교향곡은 우주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로 그는 이 작품에 자신의 우주를 쏟아 넣었던 것이다.

그것은 문명과 문화,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며 인류의 이상향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의 기념비적 이벤트였다. 그러나 ‘가장 성스러운 예술을 최상의 형태로 구체화했다’고 그 자리의 의미를 설명했던 토마스 만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그 누구도 4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이 시대를 휩쓸어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여러 교향곡에서 인간의 광포(狂暴)한 내면을 집요하게 추적했던 말러, 그는 알고 있었을까. 인간에게 잠재된 마성(魔性)이 인류를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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