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비밀통화 안하기가 도청 대책?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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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로는 사적인 대화만 합니다. 전화로는 비밀사항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국방부 장관 휴대전화는 도청이 가능하지 않으냐’는 한나라당 박진(朴振)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휴대전화로는 기밀을 요하는 대화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도청당할 염려가 없다는 논리였다.

이날 질문의 핵심은 국방부 장관 휴대전화의 도청 여부였다.

국방부 장관은 이 문제에 관한 전문가는 아닐 수 있지만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으로서 휴대전화 도청 여부에 대한 국민(대표)의 의문을 풀어줄 기본적인 책임은 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정히 불안하면 쓰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로 질문의 핵심을 비켜갔다. 2주일 전 국가정보원의 휴대전화 도청 사실 시인 이후 도청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처지에서는 기가 막힐 대답이다.

부적절한 발언은 비단 윤 장관만 한 게 아니다.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은 같은 날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정통부가 휴대전화 도청 사실을 은폐해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의원들에게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국회의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맞받아쳤다.

진 장관은 또 국정원의 도청 대상이 된 인원이 ‘기껏해야 1000명’이라고 말했다가 “국민을 모독하는 말”이라는 의원들의 집중적인 성토를 받기도 했다.

진 장관의 발언에는 도청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국민 다수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지엽 말단의 문제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통신비밀의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대한 몰이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편하면 전화 안 쓰면 될 것 아니냐”, “별문제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는 정부에 대해 국민은 무엇이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냉소와 조롱은 결코 국무위원의 덕목이 될 수 없다. ‘별 볼일 없는’ 국민도 도청을 걱정하는 지금의 현실을 장관들은 조금이라도 헤아려줬으면 좋겠다.

이명건 정치부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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